성에꽃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여.
한겨울의 새벽에 시내버스를 타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 차창에 낀 성에를 손으로 문지르거나 입김으로 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최두석 시인은 겨울 새벽 차창에 서리는 뿌연 성에에 꽃이라는 이름을 달아주면서 그 속에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성에꽃으로 아름답게 형상화했다. 1980년대 아픈 역사의 상흔을 ‘친구’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시대적인 아픔을 공감하게 한 것이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은 지워져도 그 차가운 아름다움은 희망처럼 존재한다. 이 시에서 성에꽃은 그것이 지워지고 난 자리에 비치는 시적 화자의 얼굴로, 자신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친구로 이미지가 전이되는 객관적 상관물로서, 더 나아가 친구에서 서민들로까지 이미지를 확장한다. 이렇듯 이 시는 민중들의 고단한 삶과 무겁고 어두운 사회 현실을 지성과 감성의 조화로 노래한 작품이다. /박병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