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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공손한 기울기

 

공손한 기울기 /최서진

- 의자



저녁이 내리는 마을에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깊어지는 불빛과

가장 멀리서 오는 불빛이 있었지

나는 그 사이에 놓은 의자



모서리마다 긁힌 표정으로

네 다리가 꺾인다

늙은 마술사처럼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다리사이 별똥별이 떨어진다

자꾸 아래로만 가라앉는 저녁

바람에 나뭇결이 사소하게 어긋난다





안쪽에서부터 천천히 무너져 아픈 방향들

누구도 앉힐 수 없다



나는 생각하는 자세로 기울어진다

기울어진 축만큼 젖은 바람이 분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주저앉아

낮은 자세로 온 몸이 뜨겁다



의자가 지문을 물고 나무처럼 자란다



반 년간 『작가연대』2012년 상반기호(통권 7호)



 

 

 

침울한 사람이 걸어오듯 저녁이 오고 불빛들은 깊어질 때 하루 동안의 상처가 덧날 때가 있다. 어둠 속에서 비로소 생채기를 혀로 핥는 동물적 본성, 모든 생존하는 것들의 비애일 것이다.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자꾸 가라앉는 감정을 자연은 사소하게 어긋나고 가까스로 평형을 유지하던 한 축이 무너져 마음 한 자락 허용할 수 없을 때 아무 표정도 없이 제 몸이나 기울여 슬픔의 포즈를 취할 뿐 눅눅한 바람 속에서 신열이 오르도록, 의자에서 뿌리가 뻗고 잎이 솟아오르도록. /최기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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