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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걷다 보면 산을 탄다

걷다 보면 산을 탄다

/허정희

흔들흔들

올라갔다 내려갔다

땅바닥에 닿았다가 하늘에 솟구치다가

움직이는 산에 대하여, 걸어가는 나에 대하여

그림자가 너울너울 산등성을 타고

정해진 그림자 속에 발을 담그었다가

지나쳤다가, 또 다가서다가

그렇게 알 수 없는 걸음을 놓으며 산을 탄다

다가가면 빛은 밝아 오고, 멀어지면 등 뒤에서 빛나는

등 돌려 별들을 지나치다 보면 어두워서 더 검게 보이는

나뭇잎 뒷골목 세상에서 유유히 속풀이하듯 시원타 웃어제낀다

오늘은 어디서 잠시 쉬었다 갈 수 있을까

멀어지는 불빛을 향해, 다가오는 검붉은 산을 향해

누군가 불러 돌아보면 걱정하는 척 그만 가라 하지만

지나치는 것이 서러운 것이 아닌데

걷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닌데

그렇게 산을 타다 보면 땀이 비가 되어 떨어지고

한 걸음도 내딛기가 버거울 정도로 다리가 휘청거릴 때

숨소리 가슴 터지게 가파오를 때, 그때

그곳에서 벗어 나오는 이 아프고도 짜릿한 기분

느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기억으로 산을 만들고 추억으로 길을 만든다

걷다 보면 그런 웅장한 산이 만들어지고 가야 할 산도 만들어지고

가지 못할 산도 나도 모르게 만들어

어디로 어디로부터 그렇게 정해진 그 길을 따라

산을 탄다

문화 가 - 00224<일간> 2002년 6월 15일 창간



 

 

 

이 시의 화자는 야간산행을 하고 있다. 밤은 낮과 달리 한층 여유롭고 상쾌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인지 갈수록 야간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시끌벅적한 주간 산행과 달리 야간 산행은 물소리와 흙 내음, 선선한 바람 등 낮에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고요한 정적 속에서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다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시의 화자는 어두운 산길을 걸으며 인생길을 떠올리고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기억으로 산을 만들고 추억으로 길을 만든다.’ 주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인생길을 완주할 수 있다. 어떻게 완주하느냐는 우리 각자의 몫일 것이다. /박병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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