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이 되어 잠을 자다 /김하정
어둠은 혼돈의 부드러운 옷자락을 걸친다
지금의 어둠도 태고의 태허를 흉내낸다
무겁고도 가볍고 깊고도 얕고 심해인가
하면 해안가이다 숲속인가 하면
나무 속이다 너인가 하면 나이고
여기이기도 하고 저기이기도 하다
잠이 올 듯 말 듯, 책을 덮을까 말까
시를 써볼까 말까 진퇴양난 속에서
어둠은 더 그윽해진다 이 어둠의 알 속에
가만히 지낸 긴 시간의 기억이 그윽히 떠오른다
그윽한 것이 어둠에 잠기면
꿈속의 알처럼 둥둥 뜨고 가라앉는다
어둠은 북명의 바닷속처럼 따사롭다
태허의 물결이 알을 감싸준다 감싸인다
-김하정 시집 <투명하고 환한 길>에서
빛의 반대로 생각한다면 어둠은 어쩐지 불안하고 음습하다. 우리에게 어둠은 불안하고 공포스런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눈꺼풀 한 번만 살짝 내리감아도 어둠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러니까 생명체에겐 빛이 필요한 만큼 어둠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은 어둠이야말로 가장 편안한 존재이다. 빛의 세계에서보다 우리는 어둠의 세계에서 더 자유롭다. 어둠은 신비의 세계이고, 그래서 꿈의 세계이며, 창조와 생산의 세계이다. 그것의 정체가 비록 혼돈이라 할지라도 어둠의 알 속에 안겨 있으면 마치 아직도 어머니의 자궁 속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편안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빛의 세계로부터 어둠의 세계 속으로 서서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장종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