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8 (목)

  • 흐림동두천 ℃
  • 흐림강릉 24.7℃
  • 서울 25.6℃
  • 흐림대전 26.6℃
  • 흐림대구 26.9℃
  • 구름많음울산 25.5℃
  • 흐림광주 26.5℃
  • 박무부산 24.9℃
  • 흐림고창 27.8℃
  • 흐림제주 28.0℃
  • 흐림강화 25.0℃
  • 흐림보은 26.4℃
  • 흐림금산 27.4℃
  • 흐림강진군 26.0℃
  • 흐림경주시 25.4℃
  • 흐림거제 25.8℃
기상청 제공

[아침시 산책]바다의 아코디언

바다의 아코디언

/김명인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파도 소릴 긁어대던 아코디언

갯벌 위에 떨어져 있다

파도는 몇 겁쯤 건반에 얹히더라도

지치거나 병들거나 늙는 법이 없어서

소리로 파이는 시간의 헛된 주름만 수시로

저의 생멸(生滅)을 거듭할 뿐

접혔다 펼쳐지는 한순간이라면 이미

한 생애의 내력일 것이니

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

저 영원을 다 켜댈 수 있겠느냐

채석에 스몄다 빠져나가는 썰물이

오늘도 석양에 반짝거린다

고요해지거라 고요해지거라

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삶과 같아서 뻘밭 위

무수한 겹주름들

저물더라도 나머지의 음자리까지

천천히, 천천히 파도 소리가 씻어내리니,

지워진 자취가 비로서 아득해지는

어스름 속으로

누군가 끝없이 아코디언을 펼치고 있다

-김명인, 『바다의 아코디언』문학과 지성 2002

 

 

 

오래전, 격포에서 날아온 사진 한 장의 빛깔이 지금도 생생하다. 채석강 주상절리에 부딪혀 튀어나올 듯 주황빛으로 빛나던 햇살의 기운. 주상절리와 지는 저녁 햇살 사이로 검은 실루엣으로 찍힌 친구모습. 사진 속에서도 인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채석강 그 바다를 시인은 아코디언으로, 파도가 끝없이 펼쳐내는 주름을 아코디언의 연주로 읽고 있다. 접혔다 펼쳐지는 한 순간이 이미 한 생애의 내력으로, 쓰려고 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삶과 같아서 뻘밭 위로 잡히는 무수한 주름은 바다와 마주한 주상절리에도 옮겨 앉아 아름다운 절창을 보여주는 격포. 절리와 파도의 연주를 들으러, 아직도 우리의 젊은 친구를 만나러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고 싶다.

/이명희 시인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