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해산(解産)
/김은경
탈장한 구름이 떠있군요 구름의 윤곽은 아령칙 그늘에
덧씌운 겹겹의 그늘이어서 아무리 녹여 먹고 달여 먹고
떼먹어도 거뭇한 속살에 다다를 수 없나 봐요 저 먹먹함
얼마나 무거운 상흔인지 녹인지 쇠붙이인지, 세계의 병
원이 되었다가 삼라만상 철물점이 되었다가
만년설의 정거장이 되었다가
쓸쓸해, 하고 얘기할 때 구름은 제 목 하나의
중심을 쥐어주고 제 다리 몇 갈래의 길을 내어주고
울음 알알이 무명 피륙 한 필의 안개로 전송하고
그러고도 먹장이 젖처럼 남아돌아
날마다 하염없이 둥글어지는 구름, 아비 없는 아가를
수도 없이 낳았으나 제가 부린 게 무엇인지
도무지 모른다는 듯, 흘릴 게 정(情)밖에 없는
봄날 한마디 비명도 없이
고물고물 흰떡 같은 아가를 또
-시집 <불량 젤리>(삶창, 2013)에서
구름의 모성 앞에 고개를 숙인다. ‘아비 없는 아가를 수도 없이 낳았’다는 구절에서 쉽게 넘어갈 수 없다. 온갖 풍상을 겪었던 우리 어머니들의 신산한 생애가 뭉게뭉게 떠올라서 그렇다.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생명을 함부로 여기는 이 땅에서 자꾸자꾸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생명의 근원을 찾을 길 없어 허허롭다. 남자든 여자든 생명 하나쯤 잉태하고 해산하는 기쁨을 맛보길 염원한다. 지금 이 여기서. /이민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