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불꽃 /성향숙
몸에 시너를 붓고 성냥 그었을 때
여자는 꽃이 되었다
냉정이거나 지독한 나태이거나 정열이거나
꽃은 꽃이다
쏟아지는 관심으로
한 번에 발화되는 수많은 눈빛들
놀라운 초현실적 꽃의 진원지는
텅 빈 햇살, 눈부신 바닥, 꽉 찬 어둠
뒤통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상상하도록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미, 살갗에 다닥다닥
붉은 꽃들, 외상 혹은 내상
꽃물 터져 흐르는 곳 푸른 잎 한 장 덧대본다
-출처- 『엄마, 엄마들』 푸른 사상/ 2013년
막 태어난 신생아의 하품을 보면서 천천히 벙글어지는 나팔꽃이 생각났다. 흔히 아이들을 사람꽃이라 하는데 그 순간 아무 이유 없이 눈앞에서 나팔꽃의 개화와 아이의 하품이 겹쳐졌다. 그렇게 탄생은 꽃으로 시작된다. 빙 둘러싸인 가족들, 그 순간 그들은 자연스럽게 아이가 주인공인 무대에 참여한다. 제 몸에 시너를 뿌린 여자도 지금 생의 절정에 꽃을 피우는 중인가? 살다가 살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한 죽음이 꽃 중의 꽃, 붉은 장미꽃이다. 누구나 한 번은 주목받는 것일까? 풍경 앞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술렁거림을 듣는다. 결국 인간은 꽃으로 시작해서 꽃으로 마감하는 생이다.
/박홍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