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霜降)
/이상국
나이 들어 혼자 사는 남자처럼
생각이 아궁이 같은 저녁
누구를 제대로 사랑한단 말도 못했는데
어느새 가을이 기울어서
나는 자꾸 섶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뿔을 적시며>(2012년, 창비)에서
“아궁이 같다”라는 말은 낯설다. “굴뚝같다”라는 말이 기다려도 드러나지 않는 안타까움을 담았다면 이 말은 스스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대상 없는 사랑의 허전함을 오늘 우리도 아프게 겪고 있지 않은가. 그가 누구였든 가슴 속에 숨겨놓은 사람 하나가 상강 무렵이면 자꾸 떠오른다. 그래서 ‘제대로 사랑한단 말도 못했’다는 구절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아 못내 서럽다./이민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