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
/이시영
시인이란, 그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우주의 사업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언제 나의 입김으로
더운 꽃 한 송이 피워낸 적 있는가
내가 언제 나의 눈물로
이슬 한 방울 지상에 내린 적 있는가
내가 언제 나의 손길로
광원(曠原)을 거쳐서 내게 달려온 고독한 바람의 잔등을
잠재운 적 있는가 쓰다듬은 적 있는가
-이시영 시선집 <긴 노래, 짧은 시/창작과 비평 2009>
시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한 번쯤은 우주적인 꿈을 품어 본 적 있을 것이다. 광대무변한 우주를 떠올리며 무한한 상상을 펼치다 보면 문득 나를 발견하고 그 작고도 초라한 모습에 눈물 흘려 본 적 있을 것이다. 그 지점에서 시인은 우리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우리들의 한숨이 떠돌다 들판을 달려와 머물 때 그 바람의 잔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다. 어쩌면 진정한 우주의 사업이야말로 화성탐사선을 쏘아올리고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일보다도 내 이웃의 고단한 잔등을 쓰다듬어 주는 데 있지 않을까.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