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30일 일본 조선대학교 조선문제연구센터(센터장 강성은 조선대 부학장)와 도시샤 대학교 코리아연구센터(센터장 오타 오사무 교수), 한신대학교 유라시아 연구소(소장 박상남 교수)가 ‘세계사 속의 조선정전협정과 재일 조선인’이라는 주제로 함께한 학술 심포지엄에 참가했습니다. 형제전쟁과 분단, 그리고 정전체제는 지금도 한반도의 발전을 총체적으로 가로막는 걸림돌일 뿐만 아니라 이산가족, 해외교민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주었고 여전히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 중국의 부상, 일본의 헌법 개정만이 아니라, 최근 영토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긴장과 갈등은 동북아시아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세계 평화의 중요한 축입니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평화를 정착하는 일은 주변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시급한 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 대학의 연구자들이 정전협정의 내용과 의미, 특히 재일 조선인들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 당면한 과제를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정전협정 60년이 끝나가는 무렵에 조선대가 남북과 일본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함께 참석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헤이트 스피치’라고 조선인을 증오하는 데모와 연설을 하는 일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는 코리아타운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가는 것조차 위협을 느낀다는데 그곳에 있는 한국문화센터에는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세상 어디에나 국경을 넘어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은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대학교는 1956년에 해외 교포들이 해외에 세운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입니다. 특히 차별과 억압이 지속된 일본에서 일본정부의 지원 없이 재일조선인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을 세우고 지금까지 유지해온 것은 참으로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남북의 이념대립과 정치적 갈등에 따라 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민족교육을 해 온 조선대학교는 지금 8개 학부에 700여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대세 축구선수의 출신학교로 이미 알려져 있지만, 올 해 세 명의 학생이 이른바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일본 사회를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고 있는 문제도 많았습니다. 일본 정부의 공적 지원이 전무하고, 세대가 지나면서 민족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도 갈수록 줄어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등록금은 물론 일본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은 대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조선대학교로 보내는 부모들의 결단이 놀라웠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지금도 해외 어느 나라에 교민 스스로의 힘으로 초·중등은 물론 고등교육기관을 운영하는 나라가 있다는 말은 들을 수 없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무슨 민족교육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길지 않은 해외 생활에서 제가 깨달은 것은 가장 구체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술 심포지엄이 있기 전날 저녁에 열린 제34회 조선대학교 정기연주회에서 다시 한번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음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각자가 익힌 노래와 연주 실력을 갖춘 아마추어 학생들로만 구성된 취주악, 관현악단, 민족기악중주단, 합창단이 보여준 기량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우리 전통음악이 세계화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재일 동포만이 아니라 해외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한국(조선)인들이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고 민족교육을 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 세계의 공영과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민간차원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난 곳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르지만, 우리는 만나는 순간, 이미 같은 민족이었습니다. 일본 공항에까지 환송 나온 조선대 교수님들의 따뜻한 얼굴이 지금도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