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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추억여행… 아이들은 동심여행

 

문미옥 관장 2011년 1월 개관
백제시대부터 사용한 쌍육판
현무암·복숭아 씨앗 공깃돌
조선시대 유모차 ‘동차’ 등
어린이 관련 진기한 유물 전시

다양한 얼음썰매·팽이·딱지 등
추억의 장난감 중장년층 향수 자극
아이들 지혜 배우고 신나는 체험도


■ 과천 아해한국전통문화어린이박물관 탐방

아부지는 코흘리개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공사장 주변에서 모은 자투리 각목과 판자, 굵은 철사를 주워 자르고 못질하고 뚝딱 뚝딱 엉성한 얼음썰매를 만들어주었다.

아이는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는 말을 뒤로 하고 책 보따리를 마루에 냅다 던져놓곤 논바닥, 개울, 웅덩이 할 것 없이 얼음이 언 곳이면 내쳐 달려가 썰매지치기를 했다. 해거름 무렵 손발이 꽁꽁 언 채 들어온 자식을 본 엄마는 야단을 치다가도 치맛자락으로 언 손을 살포시 감싸주었다.

팽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놀이로 동네 골목골목은 개구쟁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언제나 가득 찼으나 어른들은 “고 녀석들 참” 입속에 맴도는 말만 할 뿐 굳이 탓하지는 않았다.

팽이에 실을 감아 바닥에 힘껏 내던질 때 전해지는 손맛과 상대방 팽이를 맞춰 단숨에 쓰러뜨리는 찍기, 심을 살살 밀어 싸움 붙이기에서 이길 때의 짜릿한 쾌감은 꿈속까지 이어졌다.

여자애들은 공깃돌이나 고무줄만 있어도 서너 시간은 너끈히 축냈다. 가끔 짓궂은 남자애들이 고무줄을 끊고 줄행랑치면 속은 상했지만.

옷을 기워 입고 배속엔 ‘꼬르륵’ 소리가 들렸던 그때 그 시절 아이들은 그런 놀이가 있어 참 행복했다.

 

 

 



스물다섯 새파란 나이에 당시 청주사범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현 서울여대 문미옥(56·여) 교수는 학교유아교육학회 회장 재임 시절인 2004년 일본 어린이 관련 학회대회 초청 길에 나고야 팽이박물관을 들렀다.

또 일본 황실의 유물 창고인 정창원(正倉阮)도 찾았다.

그곳에서 그의 눈을 번쩍 뜨게 한 물건은 국내에서 생산된 88올림픽 팽이 등 다양한 팽이와 조선시대 쌍육판으로, 마음속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아동학을 전공한 저로선 부럽고 한편으론 부끄러움이 앞섰습니다. 국내엔 그때까지 아이들에 관한 유물전시관이 전무했고 나 또한 박물관을 세울 생각을 전혀 못했지요.”

문미옥 관장은 그때부터 아이와 연관된 박물관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루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과천시 주암동 부지 1만3천여㎡ 중 일부에 지상 3층(연면적 1천980여㎡) 규모로 첫 삽을 뜬 지 1년6개월 만인 2011년 1월 아해박물관 탄생을 온세상에 알렸다.

사전에 인사동, 장안평 등 전국 골동품 가게를 기웃거리며 진기한 500여점의 전시품을 수집했다.

파스텔톤의 은은한 조명이 내려앉은 전시관에 들어서면 관람객에게 첫인사를 건네는 것은 태항(胎缸)과 계녀서(戒女書),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 백쪽 저고리다.

태항은 생명존중의 뜻이 내포돼 있고, 우암 송시열이 시집가는 딸에게 전해주었다는 계녀서에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가 적혀 있다.

천인천자문은 할아버지가 천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글을 써준 현인들의 덕과 지혜, 학문을 본받으라는 깊은 뜻이 깃들어있고, 자식의 무병장수를 위해 백 조각의 천을 잇대 깁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담겨있다는 문 관장의 친절한 설명에 일순 숙연해진다.
 

 

 


윷놀이, 팽이 돌리기를 신나게 즐기는 닥종이 인형 어린이들과 눈 맞춤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지금의 유모차 격인 동차와 아기들이 걸음마 연습을 했을 때 사용했던 굴렁이에 선인들의 지혜가 돋보임을 느낀다.

공깃돌로 사용했던 놀이감은 지방마다 제각각으로 현무암, 사암, 규암, 기와, 소라, 고동, 오동, 송백, 오리나무, 복숭아 씨앗 등이 나도 봐달라고 칭얼댄다.

문헌이나 구전으로 전해진 것을 바탕으로 재현한 공깃돌도 전시해놓았고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지방의 광산물과 특산물을 배울 수 있도록 우리나라 지도에 표기한 친절함도 잊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에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바깥에 나가지 못하니까 엽전을 이불이나 베개 위에 놓고 놀았어요. 그러다가 엄마에게 솜 죽는다고 야단도 맞았겠지요.”(웃음)

한켠엔 원시시대에 사용했을 법한 돌을 잘게 부셨던 주먹도끼와 곱게 다듬었던 돌 판도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윷판 앞에 선 기자에게 문 관장은 설명에 앞서 위를 쳐다보라고 했다.

전시관 일부를 2층 높이까지 터 벽면을 벽돌 대신 유리로 마감한 그곳엔 조선조 태조 때 만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 중 하나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 붙어있었다.

이 지도를 가리킨 이유에 대해 그는 “중심점인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늘의 28수(宿) 별자리가 윷판에 담겨있어요. 말하자면 윷판은 천문학의 원리가 숨어있으며 소우주인 셈이지요. 또 윷가락의 둥근 부분은 하늘, 반대편 각진 부분은 땅을 의미합니다. 도, 개, 걸, 윷은 말과 소, 돼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농부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고요.”

한민족 민속놀이인줄로만 알았던 기자에겐 그런 숨겨진 진리가 있고 선대들이 한낱 놀이에도 천문학에 대입시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무가 아닌 콩과 팥, 밤, 송백씨, 오리나무 열매, 복숭아 씨앗 등 곡물과 과실도 윷가락으로 사용했다는 것도 새로웠다.

아버지가 투박한 솜씨로 낫으로 깎아 만든 말 팽이, 양쪽이 다 돌아가는 장구팽이, 허리가 들어간 줄팽이, 돌팽이, 깨진 질그릇을 사용한 사금파리팽이, 엽전팽이, 숫자팽이, 구멍을 뚫어 심을 꽂은 바가지팽이….

외우기도 벅찰 정도로 많은 종류의 팽이 앞에 선 기자는 짧은 순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골목에서 친구와 팽이를 치며 즐겁게 놀았던 개구쟁이 시절로 돌아가는 추억에 잠시 잠겼다.

“도토리나 단풍나무 열매가 떨어질 때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본 것이 팽이의 기원이란 게 정설입니다. 윷판에 천문학이 깃들었다면 팽이는 과학의 원리가 담겨있지요. 지구와 자전과 공전,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도는 팽이의 원리를 현대에서는 비행기, 미사일, 잠수함, 스마트폰 등에 적용해 사용한 것도 흥미롭지요.”

지난 12일 때마침 박물관을 견학 온 초등학생들은 학예사의 그 같은 해설에 놀라운 듯 ‘와’ 하는 탄성의 소리를 질러댔다.

얼음썰매는 어디서 구했는지 세월의 무게에 시꺼멓게 변색이 되었고 일부는 나무가 삭아 떨어진 모양새가 오히려 정감이 넘쳤다.
 

 

 


벽면에 기대 선 방향썰매, 외발썰매, 서서타기썰매 등을 한참 바라보다 오른쪽으로 걸음을 다시 옮겼다.

고려와 조선시대 무인들이 무예를 익히는 방법으로 행했던 격구와 장치기를 스치듯 둘러보고 각종 연과 얼레 앞에 서니 연 끊어먹기에 이기려고 곱게 빻은 유리를 부레풀에 끓인 개미를 칠하거나 아교를 연줄에 입히기 위해 끙끙댔던 철없던 때가 떠올랐다.

전시관에 진열된 승경도는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만큼 조선조 벼슬을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고 승람도는 전국 팔도를 편안히 집안에 앉아 유람하는 현재의 블루마블 보드게임으로 아이들이 즐겼던 놀이다.

전시관 중앙엔 조선시대 서당을 재현해 놓은 제법 넓은 공간이 나오고 그 천장엔 사각형 모양의 하얀 아크릴판에 박물관 명칭인 아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던 석보상절 글귀를 새겨넣어 박물관 설립자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정창원에서 문 관장을 충격에 빠뜨렸던 쌍육판도 유리 상자 안에서 눈길을 기다렸다.

이 놀이는 두개의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만큼 자신의 말을 전진시켜 먼저 적진에 들어가는 편이 이기는 방식으로 백제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시관 관람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서로 마주보고 진열된 실뜨기, 실패자동차, 새총, 뽑기, 구슬, 딱지 등도 모든 유물이 그러하듯이 중장년에겐 향수를 자극하고 어린이는 한번쯤 갖고 놀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는 존재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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