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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세월 이겨낸 관악의 자존심 사방 1천리 속세가 발 아래

 

청아한 계곡물 소리 벗하며 오르다
바위 틈 약수 한모금에 갈증 달래고
은은한 목탁소리 퍼진 산자락 따라
다람쥐와 숨바꼭질하며 연주암까지

절벽 위 석축 쌓아 만든 연주대 향해
수백개 돌계단 오르면 땀이 비오듯
최정상 내딛자 과천·서울 전경 한눈에
기암괴석과 어울린 나무들에 절로 탄성

하산길 파전에 막걸리 한잔, 피로 싹~

‘경기 5岳’ 관악산 등산 : 과천향교~깔딱고개~연주암~연주대

‘배고파 지은 밥이 뉘도 많고 돌도 많다. 그 밥에 어떤 돌이 들었느냐. 초벌로 새문안 거지바위, 문턱바위, 문바위 동구재 배꼽바위, 밧바위 배꼽바위, 문턱바위, 문바위 동구재 배꼽바위, 밧바위, 유각골로 내려 필운대 삿갓바위… 과천 관악산 염불암….’

태백산맥의 철령부근에서 분기해 가평, 포천 등 경기도 북동부를 숨 가쁘게 달려온 광주산맥이 또 한 번의 산고를 치른 끝에 태어난 해발 629m의 관악산은 바위타령처럼 한 발작 옮길 때마다 돌을 밟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돌산으로 유명하다.

웬만한 빌딩높이의 큰 바위를 가슴에 얹고 머리에 이고 사는 관악산은 등산객들에겐 빼어난 경치로 즐거움을 안겨주지만 그 자신은 무척 답답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산이다.

경기 5악(岳) 중 하나로 꼽히고 계절마다 변하는 모습이 금강산과 같다해 소금강으로 불리는 이 산의 과천 근교 등산객들이 즐겨 찾은 길은 과천향교를 옆에 끼고 올라가는 코스다.

관악산 등반길 입구엔 조형미가 빼어난 다리 밑으로 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 흘러온 계곡물은 산천어나 쉬리가 노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맑디맑다.

땡볕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철엔 비온 뒤 제법 넓은 공간에 물이 가득하면 개구쟁이들이 텀벙 뛰어들어 재잘거리는 소리가 숲 사이로 퍼져나가고 늦가을이면 갈색 낙엽이 그 물위에 무임승차해 세상구경에 나선다.

가끔은 주변정취를 훔쳐 화폭에 담는 무명화가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초입인 향교 앞에 자리한 느티나무는 한자리에서만 300년이 넘은 세월을 견뎌 인간에게 무언의 인내심을 일러준다.

과천향교에서 정상까지 등산길은 3.2㎞로 부지런히 오르면 1시간30분 걸리나 기왕 산행을 즐길 참이면 주변경관과 숲이 선물하는 생기를 즐기며 갈 일이다.

 


계곡을 끼고 난 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관악산 정상을 향하는 첫 번째 고비인 깔딱고개를 만난다.

경사가 가팔라 자연 상태라면 미끄러지기 십상인 이 고개는 등산객 편의를 위해 돌계단을 만들었지만 끝나는 지점에 달하면 호흡은 가빠온다.

별로 짐스러워 보이지 않는 배낭을 메고도 자신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동행에게 뒤쳐진 등산객이 “어제 술을 과하게 먹었더니 힘들구먼”이라며 혼자소리로 객쩍은 변명을 늘어놓는 지점이기도 하다.

주변 풍광을 구경하며 1천650m 오르다 갈증을 느낄 즈음 바위틈새에 솟아나는 약수터가 기다린다.

‘향을 사름은 마음의 악취를 없애고자 함이며 촛불을 밝힘은 마음의 어두움을 밝히고자 함이며 맑은 물은 마음을 청정케 하고자 함이며…’.

목마름에 약수 한 모금을 들이켜 갈증을 달래고 고개를 들어보면 네모반듯한 오석에 새긴 글귀가 눈에 들어와 일순이나마 마음을 추스르게 한다.

관악산 과천 등반의 또 하나의 매력은 대부분 길이 계곡물과 벗하며 졸졸 흐르는 청아한 소리를 벗하는 것이나 오랜 가뭄으로 물이 말라 간간이 들를 수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연주암을 앞두고 숨 가쁜 오름세는 다시 이어지고 은은한 불경소리와 목탁소리가 산자락을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연주암을 코앞에 두고 나무계단을 올라갈 때 지금은 이용하지 않은 예전 돌 계단에서 다람쥐가 잠시 숨었다 나타나곤 하며 나하고 눈을 맞추는 모습이 숨바꼭질하는 듯하다.

관악산엔 다람쥐 외 고라니, 두더지, 족제비, 멧토끼, 청솔모와 도롱뇽, 북방산 개구리, 누룩뱀, 유혈목이, 살모사 등 양서류와 파충류도 서식해 생태계가 건강함을 보여준다.

신라 문무왕 17년(677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연주암 경내에 들어서면 세월의 더께가 곳곳에 묻어날 만큼 사찰은 고색창연하다.

등산을 한 지난 18일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인데다 장맛비가 온다는 소식에 등산객의 발길이 뜸해 산사는 고즈넉했다.

이곳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4호인 삼층석탑과 효령대군 영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1호)이 모셔져 있다.

연주암을 뒤로하고 조금 더 오르다 다시 산을 내려가는 나무계단의 끝자락에 역시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관악사지(경기도 기념물 제190호) 터가 나온다. 일설에는 산사태로 없어졌다는 이 절은 석축만이 옛날의 자취를 더듬어보게 한다.

그 옆에 당시 스님들이 밥을 짓거나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엔 아직도 물이 고여 있어 선인들의 안목을 짐작케 한다.

연주암으로부터 정상부분에 오르기 직전 수백개의 돌계단은 등산객에게 정상의 자리를 쉽게 허용 않겠다는 관악산의 마지막 자존심이 버티고 있는 자리로 등산길은 실로 가파르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에 찰 무렵 등산객들의 입에선 “깔딱고개는 댈 것 아니구먼”이란 말이 자신도 모르게 절로 터져 나온다.

중간지점에 과천시가 만든 조망대에 서면 거대한 죽순이 직선으로 솟아있는 듯한 절벽위에 세운 연주대와 과천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관악산의 최대 명물인 연주대는 사진작가들이 작품소재로 즐겨 찾을 만큼 절경이고 등산객들이 카메라로 기념 촬영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신이 만든 걸작이라는 표현 외엔 달리 기술할 적당한 단어가 없는 절벽의 절묘한 생김새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그 위에 석축을 쌓아 만든 암자인 연주대는 이 높은 산에 축성한 것이 불가사의하게 다가선다.

암벽의 절리(암석이 갈라져 생김 틈)부분에 오직 빗물 하나로 뿌리박고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참나무 등은 기암괴석과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연주대는 고려 말 충신들이 고려왕조가 멸망하자 관악산에 올라 옛 도읍지인 송도(개성의 옛 이름)를 바라보며 주군을 그리워했고 태종의 왕자들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왕위에 대한 미련의 달랬다는 애틋한 사연이 전해져 오고 있다.

10여㎡(3~4평)도 채 되지 않은 연주대 암자에 이르기 전 제법 널찍한 삼각형 모양의 바위에 오르면 관악산 최정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높음을 자랑하는 여의도 63빌딩도 발아래 있고 중첩된 산들의 연봉들이 장엄하게 펼쳐진 경치도 한 눈에 들어온다.

여인의 허리처럼 굴곡져 명주 폭처럼 굽이쳐 흐르는 한강과 마주서 있는 삼각산도 반갑다고 눈인사를 건넨다.

쾌청한 날이면 사방 1천리가 훤히 보이는 전망은 관악산이 아니고는 도저히 연출할 수 없는 풍경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은 자격이 충분이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면적이 그리 넓지 않은 정상부분은 새해맞이 일출을 보고 한해 소원을 비는 때가 연중 가장 많은 등산객이 몰려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가 된다.

정상 근처엔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는 지름 3m, 높이 10m인 칼바위와 10여개의 창을 모아 세운 놓은 듯한 암자바위가 또 하나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외에도 갖가지 형태의 바위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통일신라가 광활한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의상대사를 시켜 건립했다는 연주대 암자의 응진전(應眞殿)엔 열여섯 분의 나한이 모셔져 있다.

이곳에 상주하는 보살은 연주암 뒤편 바위에 말과 곰, 코끼리 형상을 한눈을 팔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말처럼 달려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 동물은 얼핏 봐서는 그 형상을 알 수 없어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야 한다.

연주암은 수능시험을 앞둘라 치면 자녀의 좋은 성적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

산행의 피곤함은 하산길 초입에 자리한 음식점들에서 시장기와 지친 다리를 달랠 겸 파전에다 막걸리 한잔 걸치면 어느 정도는 풀린다.

지기지우(知己之友)와 함께라면 좋겠지만 혼자라도 어떠랴. /과천=김진수기자 k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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