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임동확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틀림없는 분수
오직 그 자체의 동력만으로 다함없이,
조정자 없이 두 팔을 한껏 벌린 채
연초록 물줄기를 사방천지로 마구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단 한 방울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분수
그때 꽃이란 순결한 물의 진액으로 짜 엮은 꽃다발,
그때 열매란 순수한 물의 결정이 탄생시킨 보석들
세상의 나무가 어떤 형태로 서 있거나 흔들리고 있는
끊이질 않은 물의 응결, 물의 연금술로 찬란하다
가까이서 보면 낱낱이 외로운 물방울의 육화인,
그러나 멀리서보면 연봉(連峰)의 파도로 출렁이는
미처 그늘을 알지 못하는 절정의 어린 이파리들이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서로를 닮지 않은 채
오직 하나의 존재였을 뿐인 지상의 나무들이,
저마다의 수압(水壓)으로 굵고 가는 분수의 가지마다
가장 소중한 순도의 색채를 마구 쏟아내는 봄날엔
-출처: 계간 『시산맥』 2014년 봄호 발표
나무는 걸을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수동적인 사물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것이다. 나무는 불에 탄다. 나무를 깎아서는 가구나 의자를 만든다. 하나 거대한 범선을 만든다. 수동적인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목공이 한다. 그 작업에 더 가치를 부여하고 나무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이 시인이다. 누가 나무를 분수로 발상전환을 할 수 있나. 임동확 시인의 재치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읽어내었다. 수동적인 나무를 능동적인 분수로 변화시켰다. 나무를 나무이게 하는 힘을 분수를 분수이게 하는 근원적 에너지를 이 시에서 읽어낼 수 있다. 좋은 시로 늘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수동족인 것을 능동적인 것으로 전환해내는 시력은 대단하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