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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

/尹錫山

경주박물관 한 귀퉁이, 조명마저 다소 비켜간 자리

못생긴 질그릇 하나 놓여 있다.

본래부터 그 자리가 제 자리인 양

자리를 잡고 앉은 질그릇.

아무것도 보일 것 없는 속, 모두 드러내놓고

그저 그렇게 놓여져 있다.



있는 속, 없는 속 모두 드러내놓고 사는 요즘.

아무리 속 다 드러내놔도

들여다보는 이 하나도 없는,

지지리 못난 질그릇 하나

세상 한 귀퉁이,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 尹錫山 시집 ‘나는 지금 운전 중’

 

 

 

있는 속, 없는 속 모두 드러내놓고 살아야 그나마 간신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속이 깊어 그 속을 다 들여다볼 수 없거나 속이 얕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그 속을 간파당하거나 간에, 어쩔 수 없이 속을 드러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쓰임새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 못생긴 질그릇을 보라. 보잘 것 없는 속을 다 드러내놓고 있다. 모두들 각자 제 속을 드러내느라, 남의 속을 들여다보느라 여념이 없는데도, 지지리 못난 이 질그릇은 조명마저 비켜간 한 귀퉁이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박물관의 빈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김명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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