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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경희궁을 찾아서

 

 

 

가까이 있지만 잘 가지 않게 되는, 그러면서도 늘 마음이 쓰이는 곳이 있다. 바로 경희궁이다. 사람들은 경희궁을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아파트 이름으로 더 많이 알고 있지만, 어엿한 서울 5대 궁궐 중 하나이다. 문화해설사를 공부하는 많은 이들이 경희궁을 다녀오면 가슴 아파한다. ‘왜 이런 곳을 몰랐을까’ 하는 자책도 있고 ‘궁궐이라 치기에는 너무 소박한 규모’에 마음이 아픈 것이다.

경희궁은 광해군이 지었다. 광해군 9년에 짓기 시작한 경희궁은 임진왜란 이후 창덕궁, 창경궁 중건공사와 맞물려 광해군 15년에야 완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광해군은 인조반정에 의해 쫓겨나면서 경희궁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희궁을 인조임금이 이어하여 살게 되면서 경희궁은 실질적인 궁궐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경희궁은 처음에는 경덕궁이라 불렸다. 하지만 영조 36년 원종의 시호 ‘경덕과 음이 같다’하여 ‘경희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후 동궐인 창덕궁·창경궁과 대비해 경희궁은 ‘서궐’로 불리게 되었다.

경희궁을 가기 위해서는 서울역사박물관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지금이야 경희궁의 정문이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나 한참 뒤에 자리하고 있지만 경희궁의 정문은 원래 지금의 구세군빌딩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그 자리에 영빈관과 신라호텔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흥화문은 그들의 정문으로 그대로 남아있었다. 1988년에서야 경희궁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구세군빌딩이 들어서 있어서 정문인 흥화문은 원래의 자리가 아닌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게 된다. 흥화문의 원래 자리의 흔적은 작은 표지석으로 대신하고 있다.

표지석을 지나면 서울역사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입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리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궁궐에 자리하고 있는 금천교이다. 궁궐 안에 있어야 할 금천교이지만 지금은 덩그러니 홀로 떨어져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금천교를 지나 다시 정문인 흥화문을 지나고 숭정문을 통과해 법전인 숭정전을 마주한다.

숭정전은 경희궁의 법전이다. 이곳에서는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왕의 즉위식 등의 나라의 공식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숭정문과 숭정전에서는 경종과 정조, 헌종임금이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이 숭정전 또한 복원된 건물이다. 원래 숭정전은 동국대학교 안의 ‘정각원’이라는 법당으로 쓰이고 있는 건물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조계사로 이전되었던 숭정전이 이제는 대학교에 자리한 셈이다. 숭정전 내부 천정에는 봉황대신 경복궁과 덕수궁처럼 용이 자리하고 있다.

숭정전을 지나 편전인 자정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편전은 왕의 집무실이다. 자정전에서 마지막으로 업무를 보셨던 임금은 철종이다. 철종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헐린 자정전은 새롭게 복원되었다.

이제 태령전으로 가보자. 태령전은 처음에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는 않았던 전각이지만 지금은 영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있다. 영조 20년에 처음으로 어진을 봉안하고, 영조임금이 승하하신 후에는 혼전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한 때는 고종임금의 어진이 봉안되기도 했다.

이제 경희궁의 명물인 서암으로 가보자. 서암은 태령전 뒤에 있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이다. 이 바위는 임금님의 바위인 ‘왕암(王巖)’으로 불렸었는데 그 이름으로 인해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상서로운 바위’라는 ‘서암(瑞巖)’은 숙종 때 붙여진 것이다.

경희궁은 궁 안의 모든 전각을 세어보아도 열 손가락에 꼽고도 남음이 있다. 왕이 생활하면서 정치를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소박해져버린 궁궐이지만 그래도 경희궁에서 500년 긴 역사를 쓴 조선의 희노애락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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