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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괜찮아, 란 말

괜찮아, 란 말

                             /박라연



고요는

습자지처럼 얇아서 입이 없어서

안으로만 지는 쪽으로만 뿌리를 뻗는 걸까요?

안 보일 만큼 넓고 깊은 보폭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비위가 두터워서 입이 많아서

바깥으로만

적이 되면서까지 이기는 쪽으로 뻗었을까요?

그 짧은 생의 목도리로요



고요와 목도리는

괜찮지 못한 만큼 괜찮아,를 되뇌었을까요?



오늘은 물어보고 싶습니다

괜찮지 못한 그 많은 시간들을 어디로

데려다줬는지

 

 

문득 시인은 자신의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습자지처럼 얇고 입조차 없어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게 된다. 색과 온도, 무게와 밀도도 가늠할 수 없는, 이 형체-없는 ‘무엇’이 자꾸만 시인의 내면으로 밀려온다. 걸을 때마다 출렁거리고, 멈춰 서서 돌아봐도 늪처럼 술렁거린다. 까닭 없는 울음일까, 손에 잡히지 않은 기억의 먼 곳들일까. 내부로부터 시작해, 다시 모든 내부로 회귀하는 그것은, “안 보일 만큼 넓고 깊은 보폭”으로 혈관과 근육, 또한 뼈의 마디와 부드러운 이마를 돌아 몸 전체를 감싸버리고 만다. 급기야 그는 “비위가 두터워서 입이 많아서/ 바깥으로만/ 적이 되면서까지 이기는 쪽으로 뻗었”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데, 또한 그는 ‘이기다/지다’의 대립도 삶의 기나긴 시간 속에서는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됨을 깨닫는다. 이것이 괜찮아서 흘려보낸, 혹은 괜찮지 못해 가슴에 못 박은 그 많은 사건들이 아득해진 이유가 아닐까. 단단하면서도 물렁물렁한, 모든 저녁의 빛을 산발하는 ‘그것’에 시인은 하나의 이름을 붙이기로 작정한다. 이 단어는 바로 ‘고요’라는 침묵의 몰아침이자 꿈의 직립이고, 시인을 겹겹이 둘러싼 삶의 의지다.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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