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걸다 2
/이양희
아득한 은행나무길을
헐벗은 한 마음이 걸어가요
끝이 보이지 않는 은행나무길엔
햇빛만 굴러다녀요
가슴 속 쌓인 말들 다 풀어 보낸
은행나무 빈 가지들은 반짝거려요
한 마음이 한 마음에게 말을 걸어요
말을 거는 일은 마음을 거는 일
철 지난 은행나무길에서 알게 되었어요
한 마음이 한 마음의 말에 걸렸어요
한 마음을 걸었어요
아득한 은행나무길을 함께 걸어가요
은행나무길은 햇빛에 걸렸어요
길 끝에서부터
은행나무 새순이 톡톡 올라와요
저기, 노란 단풍으로 가득 찬 은행나무 길이 있다. 이파리가 바람결에 흩날리면 그 길도 급류처럼 출렁거리며 시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직 그 ‘길’에 접어들지 않았지만, 숨을 들이마시면 온몸이 햇빛으로 불타오를 듯하다.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고, 날아가는 새도 없으며 오직 은행나무가 능선을 넘어 산자락 끝까지 달려가는 그 강렬한 흐름만이 존재한다. 길을 가면 은행나무를 산란하는 빛의 진공이 그를 삼켜버릴지 모른다. 절대적 법열(法悅)에 가까운, 그의 욕망은 이미 그를 길의 한 복판으로 이끌고 있다. 길에 사로잡혀버린, 불가사의한 시태가 시인의 앞에 있다. 그 순간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헐벗었다는 것을 느끼고 마는 것인데, 왜냐하면 갈 수가 없지만, 반드시 가야만 하는 분명한 현실 앞에서, 그는 창조적 삶과 일상의 해태라는 극단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성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