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뉴욕 테러와 그에 따른 미국의 이슬람권에 대한 보복, 그리고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지구는 혼란의 연속이다. 이는 종교적 세계관이 다른 인간집단의 욕망이 부른 대 재앙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립과 갈등은 교리와 역사적 연원상 영원히 숙명적인 충돌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미국인이자 유대인 학자인 '브루스 페일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최근 출간된 '중동의 화해'(인바 이로넷 刊)에서 그는 이슬람 세계와 그리스도교, 유대교 세계의 화해 가능성을 펼쳐본다.
세 종교의 발생지로 여행하며 유대교 랍비와 이슬람교 이맘, 그리스정교회 주교, 개신교 목사 등 각 종교의 지도자들과 학자들, 신자들을 만난 저자는 세 종교의 공존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리고 거슬로 올라가보면 세 종교의 뿌리가 같음을 확인한다. 바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이라고 말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세 종교는 공통된 조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그렇게 서로 헐뜯으며 싸우는 것일까. 저자는 세 종교가 각자 자신들이 아브라함에 더 가깝다고 내세우며 제각기 아브라함을 다르게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종교간 불화와 불일치가 나타나게 됐다고 주장한다.
저자 '브루스 페일러'에 따르면 중동 지역에서 탄생한 이 종교들은 지배 세력이 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서로 아르바함을 소유하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 세 종교는 아브라함의 정체성을 자신의 상황에 맞도록 고쳐 씀으로써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더 가깝다고 내세웠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번제물로 바치려던 아들이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에게는 이삭인 반면, 이슬람인에게는 이스마엘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이 사건을 예수의 희생에 대한 전조라 믿었으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실제로 죽였고 이삭이 부활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은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저자는 아브라함이 화해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발견한다. 영웅의 전형적인 모습처럼, 아브라함은 실체가 없는 그릇이기에 우리는 그 속에 무엇이든 집어넣을 수 있으며, 또한 아브라함은 신과 영감을 자아내는 신성한 약속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자는 세 종교 지도자들과 생생한 대화를 하면서 이미 종교적 승리주의는 사라졌으며 갈등이 심화되는 만큼 통합의 힘도 커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현재 부시 대통령에게도 가장 필요한 문구가 바로 '중동의 화해'가 아닐까. 1만5천원. 3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