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너에게
/김수복
사랑의 시체가 말했다
가장 잘 자란 나무 밑에는
가장 잘 썩은 시체가 누워 있다고
가장 큰 사랑의 눈에는
가장 깊은 슬픔의 눈동자가 있다고
- 김수복 시집 ‘외박’ / 2012·창비
잘 자란 무성한 나무 밑에는 ‘슬픔과 희생’이라는 사랑의 시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 시의 힘은 어디에서 발현되는 것일까? 아름다운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슬픔을 지닌다. 화려한 생애의 뿌리 밑에는 사랑의 죽음이 있다는 것, 그 소멸과 부활에 대한 시인의 헌사(獻詞)는 구원에 대한 깊은 공명(共鳴)을 전해 주고 있다. 예수의 죽음위에 피어난 사랑이라는 꽃에 투명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것처럼, 잘 자란 꽃이 된 그대도, 나도 잘 죽어 잘 썩은 사랑의 시체가 되었으면 하고 꿈꾸게 되는 아, 적멸(寂滅)의 봄, 카이로스의 시간이 성큼 다가왔구나./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