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허공이야
/김종해
이제 비로소 보이는구나
봄날 하루 허공 속의 문자
하르르 하르르 떨어지는 벚꽃을 보면
이생의 슬픈 일마저 내 가슴에서 떠나는구나
귀가 먹먹하도록
눈송이처럼 떨어져 내리는 벚꽃을 보면
세상만사 줄을 놓고
나도 꽃잎 따라 낙하하고 싶구나
바람을 타고
허공 중에 흩날리는
꽃잎 한 장 한 장마다
무슨 절규, 무슨 묵언 같기도 한
서로서로 뭐라고 소리치는 마지막 안부
봄날 허공 중에 떠 있는
내 귀에도 들리는구나
저기, 이제 막 돋아난 이파리들이 흔들리며 바람이 밀어낸다. 벚꽃이 줄지어 늘어선 천변 혹은 공원의 야트막한 언덕까지 그 바람은 새살 냄새를 휘날리며 날아온다. 그리고 바람은 벚나무마다 내려앉아 가지를 흔들고, 희고 눈부신 꽃잎은 꽃을 피웠던 그 힘으로 허공에 몸을 쏟는다. 아득한 우주에서 “봄날 하루 허공 속의 문자”들을 읽는 것인데, 그 문자들은 “허공 중에 흩날리는/ 꽃잎 한 장 한 장마다” 새겨진 절규와 묵언 그리고 “서로서로 뭐라고 소리치는 마지막 안부”다. 그 목소리들이 시인의 귓속으로 들어와 단단한 침묵으로 응결되면서, 현실 어디도 없는 ‘시간’이 “봄날 허공 중에 떠 있는” 시인의 귀에 뚜렷한 색채로 펼쳐지는 것이다.
/박성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