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후
/이용한
당신이 떠난 배후는 자욱하다
남은 것들이 무거워서
나는 잠시 가라앉는다
가랑이 사이로 한 움큼 비가 내리고
이따금 눕지 못한 추억이 움튼다
밑줄이 다한 정거장에서
앙상한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가버린 골목은 묘연하다
이곳에선 누구나 휘어진다
문 닫은 것들은 어느새 녹슬었다
발바닥이 먼저 달그락거릴까봐
나는 뒤꿈치를 들고 살았다
입김만으로 충분했던
모퉁이와 겨울 사이
흘러내리기 위해 오늘은
흐린 구름을 닦는다
- 이용한 시집 ‘낮에는 낮잠 밤에는 산책’
우리는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산다.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처럼 그렇게 빛나다 사라지는 빛들, 그 빛에 한순간 몰입되었다 풀려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풀려남 후에는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이미지가 남는다. 그러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로 인해 당신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은 한동안 무거워지며, 그 무거움의 경중에 따라 헤어날 수 없는 시간을 살기도 한다. 이미 문 닫고 녹슬어버린 시간, 그것을 알면서도 가랑이 사이로 비가 내리고 이따금 눕지 못한 추억이 움튼다. 당신이 떠난 이유를 정확히 모른 채 바라보는, 당신이 떠난 저 골목, 누구나 그 뒷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곳에서는 온몸이 휜다. 그리고 밑줄이 다한 정거장에서 혹여 당신에게 달려갈까 봐 뒤꿈치를 들고 사는 날들에 대한 결론이 지어지면, 눈을 뜨는 것이다. 그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했던 흐린 구름의 창을 닦게 되는 것이다./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