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윤하섭
어버이날 봉사 활동에 나가려고
신발장에서
낡은 소가족 구두를 꺼내 신었더니
삐걱~ 소리가 난다
우리집 논과 밭을 갈아엎던 소
수레에 거름 나르고 땔감을 해오던 소
앓는 나를 태우고 병원으로 달리던 소
식구들 목숨 끌고 삶의 보릿고개 넘은 소
죽어서는 기어이 가죽 구두가 된 소
삐걱~
70킬로 늙은 내 몸의 하중을 견디며
그 소가 오늘도 날 싣고 집을 나선다
- 시집 ‘화사피(花蛇皮) / 2016·엔크
낡은 구두에서 발견한 사랑의 기억, 아버지와 소(牛)가 겹쳐 보이는 이 시에서 사랑의 무게만큼 닳았을 아버지의 생애를 본다. 그리움의 하중도 담고 가는 소가죽 구두, 가죽이 다 헤어지도록 달려온 세월 뒤에는 그 분의 사랑이 있었고, 다시 새 구두를 신을 무렵 또 다른 사랑의 기억을 생각하게 되는 소가죽 구두, 혹은 소가족(家族) 구두의 전설이 담긴 노래에 발가락으로부터 가슴까지 따뜻해진다. 이제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한발자국 한자발자국 뗄 때마다 삐걱이는 아버지의 뼈소리도 듣게 되었다./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