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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뜨락]이국에서 바라 보았던 달

 

 

어느 가을 날 푸르스름한 어두운 밤하늘에 외로운듯 걸려 있는 달의 이미지, 누구나 한 번 쯤은 상념에 젖어 그 달을 보았으리라

너무도 아름답고 눈 부시는 ‘미학의 세계’.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어떤 서러움도 내재되어 있는지, 한 편 쓸쓸하게 비추어 지기도 하는 달은 “홀로 아름답게 빛나 정작 서러운 달이어라”. 어느 누군가의 시인지 기억이 가물 가물 하지만, 제목은 ‘동천’ 이라는 시를 나즈막하게 읊조려 본다.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즈문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이 시를 음미 하노라면 춥고 맑은 겨울날의 푸르스름한 밤하늘에 신비스럽게 걸려 있는 초승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겨울 밤하늘의 높이 걸려 있는 신비스러운 초승달. 동지섣달의 밤 하늘에서도 홀로 아름답게 빛나는 그 달을 보며 필자도 한 편의 졸시를 남겨 보았다.

일이 잘 안풀리고 모든게 뜻대로 이루워 지지 않던 어느 해 였던가 슬럼프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으로 준비없이 선택한 호주여행 이었다.

여름에 떠나 겨울을 치른 호주의 살을 에이는 듯한 쌀쌀한 겨울, 준비성이 없어 여름옷 으로 한 달의 겨울을 견디며 새벽녁 그 이국 만리에서 외로움과 고독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몇자 끄적 거려 본 것이다.

지구 저편 에서도/나처럼/지금의 나처럼/저 달을 보며/내 생각을 하여 줄/ 누군가 있으려나//달이 차게만/느껴진다/이국만리 에서의 초승달/이어서 그러한가/등골이 오싹하도록//늘 아주 많이/외로웠다//마시고 싶은 새벽인데//겁이 나도록 멀리에 와 있구나//돌아갈 날은 멀고/손 꼽으니/아득하기만 하여라

또 어느 때 이던가 학부때 지도 교수이신 법현 스님 께서 사고치고 낭인처럼 움추려 들며 살던 내게 샌프란 시스코에 가자고 하신다.

스님모시고 학부 3학년 때부터 멕시코며 터키, 그리스, 이집트,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엘,룩셈부르크, 프랑스 등 오대양 육대주를 공연하고 여행하고 분주하게 다녀 보았으며 추억도 상당 하지만, 당시에는 힘겹기도 한 고단한 일정 이었다.

각설하고 서러운 세월을 보내던때 스님 께서 자타공인 명문 버클리 대학 학술 발표겸, 공연도 하고 미 합중국 여행을 하시자며 권하실때, 아 ~또 이 선지식 께서 또 상처입은 영혼을 위로해 주시고 배려하여 주심을 엿 볼 수 있었다.

버클리 에서 일주일 머물 때 남 모르게 몰래 빠져나와 학교앞의 근사했던 빠며, 선술집에서 칵테일 드링크며 미제 술로 입술을 적시고 학교안 교수 숙소로 홀로 터덜 거리며 교정안으로 들어설 때의 그 기막힌 운치며, 정경들, 특히 검은 밤하늘에 걸린 그 보름달은 영 잊혀지질 않는다.

타향에서의 바라보는 달이어서 인지, 그 달의 풍광은 서러운 내 심사 때문이어서 였나, 내 정서와 너무도 부합하는 달이어서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그 달빛이며 달그림자가 그리워서 다시 한 번 내 생전 샌프란 시스코 의 차이나 타운이며, 한국학 연구가 활발한 버클리 대학을 또 다시 가 볼순는 있으려나, 그 때의 그 달빛 서늘 하였지만,가슴 한구석 그리운 그 달빛 다시 한번 쬐 볼 수는 있을런지, 서러운 내 마음을 뎁혀준 그 달밤이 진실로 그리운 오늘이다.

오늘 정월 대보름날 환히 비취는 달 빛 또한 그 때의 그 달처럼 정녕 예사롭지 않다.

우리 스승님 께서도 저 달을 바라다 보시지는 않으실지, 하루 한끼 극미량의 공양만 허락하시고 문을 걸어 잠그신 무문관의 '90여일간의 대장정' 을 아무 탈 없이 마치시고 초인적인 고행을 감내하시어 수척하신 모습으로 세상에 모습을 보이시었는데, 중생은 어찌 그 고귀하신 깊은 혜안을 헤아릴것이며,촉새들의 구업(口業)에 어찌 댓구하랴, 문없는 문안에서 묵언 하시며 고통을 스스로 감내 하시고 폐관정진(閉關精進)하시다가 혹여, 바라 보셨을 저 쓸쓸한 달을 오늘도 무심코 바라다 보시지나 않으셨을지, 모쪼록 무리하셨을 텐데, 해 드릴 것이 없는 미혹한 제자는 자탄한다.

따듯하게 뎁힌 곡차(穀茶)는 어느덧 다 식어가고 그저 스승님의 법체 무탈 하시기만을 조석으로 간곡히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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