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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스타의 스타트랙]‘언택트’ 시대엔 느낄 수 없는 ‘Hey Jude’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의 공연 시장이 얼어붙었다.

이전과 같이 공연을 실행하기도 관람도 힘든 상황에 놓인 것이다. 물론 온라인 콘서트와 같은 대안의 공연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그 역시 대안일 뿐이다. 현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좋은 모니터와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도 실제의 느낌과는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속에서, 나는 예전의 기억을 하나 꺼내보고 싶어졌다.

2015년 5월 2일 나는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내 올림픽 주경기장에 있었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역사적인 첫 내한 공연을 보기 위해서 일찌감치 자리를 틀고 그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날의 인파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폴 매카트니와 비틀스(Beetles)의 오랜 팬부터 어렴풋이 히트 넘버들을 몇 곡 알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부모 손잡고 따라온 아이들까지 약 4만 5천 명이 집결했다. 단독 콘서트로 이 정도의 티켓 파워를 보여줄 수 있는 국내외 아티스트가 몇이나 되겠나 싶었다.

공연 전에는 사실 반신반의했다.

아무래도 그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지난 타국 투어에서의 긴 러닝 타임을 비슷하게 한다고 했을 때, 그 넓은 공간에서 얼마나 집중도 있게 콘서트를 이끌어갈지 역시 궁금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Eight Days a Week’를 시작으로 펼쳐진 그의 무대는 오랜 기간 수련해온 서예가의 한 획 한 획처럼 묵직했고 경쾌했으며 힘이 넘쳐났다.

우리는 흔히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말을 한다.

너무 흔하게 사용을 해서 이 역시 그리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데, 폴 매카트니의 공연은 내게 ‘전설’이라는 단어가 주는 정의를 재정립 시켜줬다. 세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단 한 번의 지루함도 느끼지 못 했을 정도로 매끄럽게 진행되었으며, 과거의 슈퍼 히트송들이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파괴력은 한시도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현대적으로 꾸며진 무대 장치와 효과들은 감동을 배가시켰고 적절히 사용되어 결코 넘치지 않았다.

공연 중간 린다, 존, 조지 등의 소중했던 사람들에 대한 헌정곡을 불렀을 때의 감동을 지나 종반부 ‘Ob-La-Di, Ob-La-Da’ 부터 시작된 격정적인 흐름은 불빛 잔치 ‘Let it be’를 거쳐 ‘Live and Let Die’에서 폭발해 마지막 곡인 ‘Hey Jude’에서 그 결실을 맺었다. 이후 다시 ‘Hey Jude’로 시작된 두 번의 앙코르에서 보여준 드라마틱함은 세 시간의 공연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기에 충분했다. ‘The End’를 마지막으로 무대의 불이 꺼지고 난 후, 모시고 갔던 부모님의 표정과 더불어 줄지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흰색 우비를 입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다시 한 번 감동이 밀려왔다. 모두 전설이 들려주는 음악의 힘에 행복한 투항을 한 사람들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무나 흔해진 혹은 잘 알려진 것들에 대한 감상에 무뎌질 때가 있다.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또 그 유무형의 것들의 가치가 폄하되기도 한다. 사실 비틀스라는 이름은 너무나 친숙하고, 매체의 발달로 인해 폴 매카트니의 공연은 어디에서든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감상할 수 있지만, 이 날의 폴 매카트니의 모습은 반드시 현장에서 봤어야 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그간 꽤나 무디게 살아온 것 같다.

공연을 보기 힘든 세상을 상상이나 해봤던가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지금, 흔한 것들 아니 흔했던 것들의 소중함이 절실해진다. 아무쪼록 이 사태가 진정되어 다시 그 흔함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무디게 살았던 세상의 특별함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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