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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중종반정의 교훈

 

1506년에 즉위한 중종은 1544년에 그 생을 마감한다. 중종은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반정공신들에 의하여 왕이 된 사람이다.


박원종은 원래 연산군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월산대군의 부인이자 자신의 누님인 박 씨가 연산군과의 추문(醜聞)이 떠돌았다. 이에 분노한 그는 더욱 연산군을 임금의 자리에서 쫒아내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성희안·유순정 등을 포섭하여 반정에 나선 것이다.


전날 박원종은 연산군의 매부이자 종종의 장인인 신수근을 만나 장기를 두었다. 그 자리에서 임금을 바꾸자는 뜻으로 궁(宮)을 바꾸었다. 신수근은 차라리 내목을 치라면서 반대를 하였고 연산군의 편에 섰다. 반정이 성공하자마자 신수근의 목은 1순위로 잘렸다. 실제적으로 반정은 밤에 이루어졌다. 그 반정의 밤 중종을 보호하기 위하여 군사들이 집을 둘러쌓자 중종은 자신을 해치러 온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자살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영특한 부인 신 씨가 ‘말머리의 방향이 밖으로 향했으니 우리를 보호하러 온 군사들입니다’라고 하여 말렸다. 신 씨가 중종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 된 셈이다.
중종은 즉시 궁으로 들어가 임금이 되었다. 너무 급하여 면류관마저 준비가 안 되어 익선관을 쓰고 즉위를 한 사람이다. 중종은 어질고 효성이 지극했으며 검소했지만 박원종 등 반정공신들에게 속된 말로 꼼짝도 못했다. 거의 허수아비 임금이었고 권력은 반정공신들이 장악을 했다.


얼마나 나약한 임금이었으면 자신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부인 신 씨의 폐위 하나 막아내지 못했던 것인가! 박원종은 연산군이 가졌던 많은 미인들을 차지하고 과욕을 부리다가 급사(急死)를 했다. 하지만 나머지 공신들이 권력을 계속 장악하고 그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중종은 그들을 견제하고 싶어 조광조를 등용하여 개혁정치를 하려고 했다. 조광조는 현량과 설치, 소격서(하늘, 땅, 별에게 제사를 지내는 부서) 폐지, 위훈삭제 등을 실시했지만 그 마저 남곤 등의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작으로 종종은 나약의 뜰에서 벗어나지 못해 조광조를 죽여야만  했다.


중종은 왕위에 있는 동안 계속 훈구파인 반정세력들의 손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죽기 직전에 조강지처이면서 단경왕후였던 신 씨를 만나지만 이미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결국 세상이란 첫째로 박원종의 급사(急死)에서 보는 것처럼 과욕(過慾)을 부리면 건강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둘째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의 역사적 사건에서 보듯이 권력을 움켜쥔 자는 그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로 아무리 옳고 당연하더라도 급하게 밀어붙이면 위험한 문제가 발생하다는 것이다.


넷째로 남이 만들어 준 권력의 자리는 만들어준 자들의 권력이지 본인의 권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으므로 위의 네 가지 교훈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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