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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부인 백영식씨, 남편 공적 제대로 밝혀졌으면

한국광복군 1지대 근무 남편 고 이정득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받아
가족들, 몇몇 동료들 때문에 공훈 제대로 평가 못 받아 주장

 

“남편이 그 때 동료들의 꾐에 넘어가선...”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인천 부평구의 자택에서 만난 이정득 독립운동가의 부인 백영식(89)씨는 남편의 훈장을 꺼내 놓고 지난 일을 이야기하던 중 남편의 억울함을 주장하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백씨는 “남편이 광복군 1지대에 근무하면서 이뤘던 공적들이 다른 동료들에게 갔다”며 “실제 공적이 축소돼 훈장이 수여됐다”고 말했다.

 

남편 이정득씨는 호적상 1918년생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광복군 1지대에 입대, 본부요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1990년 이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그러나 백씨는 남편이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의 꾀임에 넘어가 공훈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해방 이후 어느 날, 남편이 동료들이 부른다며 다방엘 갔다. 당시 남편은 광복군 근무를 하면서 눈이 안 좋아졌는데 어두컴컴한 다방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중 한명이 남편에게 서류를 주면서 지장을 찍으라 했다”며 “눈이 안 좋은 남편이 찍지 않고 어물쩡거리자 강제로 손을 잡고 서류에 지장을 찍게 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는 보훈처에 낼 공적 확인서였던 것. 당시 남편은 “내가 1지대에서 근무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2지대에 근무하던 사람이 1지대로 바뀌고, 내 공적을 가져가 독립장을 받은 사람도 있다"며 매우 화를 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이정득씨는 뒤늦게 이를 알았고, 억울한 마음에 이후 우울증과 화병을 달고 살았다. 급기야 병이 커지면서 정신질환까지 얻었다. 남편 대신 집안의 경제를 도맡던 백씨와 수술을 받을 정도로 허리가 좋지 않았던 큰 딸은 하루하루를 버텨내느라 보훈처에 재심요청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이정득씨는 모든걸 포기한 채 “내가 훈장 때문에 독립운동했나, 나라 살리려고 했지 뭐”라며 체념했다고 한다. 1994년 3·1절 기념행사를 다녀온 이틀 뒤 이정득씨는 많은 한을 가슴에 품은 채 숨을 거뒀다.

 

이사를 자주 다니고 워낙 생활에 경황이 없어 공적에 관한 증거 등을 챙기는데 너무 소홀했었다는 백씨는 “남편도 없고 이제 나까지 죽는다면 남편에 대해 증언해줄 사람이 없다”며 “(내가) 죽기 전에 남편의 공적이 제대로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인천 = 글·사진 김웅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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