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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체험마을 - 옛 단월초 산음분교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는 높다란 산과 산 사이로 나 있는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시골마을이다. 주변으로 봉미산, 소리산, 도일봉, 용문산 등이 둘러싸여 있고 그 품안에 중원사, 용문사 등 유명사찰과 석산계곡 같은 관광지가 숨쉬고 있다. 그 한가운데 자리잡은 단월면은 ‘장승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길가에 쭉 늘어서 있는 인간형상의 장승이 타인의 방문을 반긴다. 그런데 이 많은 장승은 ‘어디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궁금증을 가득 담은 채 마을 사람들이 일러주는 데로 ‘장승 산지’ 역할을 한다는 옛 단월초 산음분교, ‘가루니 장승촌’(전통공예체험마을)을 찾았다.

이제는 폐교가 된 단월초 산음분교는 약 2천8백여평 부지에 1층 단층 학교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때는 200여명의 학생들로 북적됐다던 산음 분교는 2001년 문을 닫았고, 더 이상 재잘대는 아이들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대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장승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학교 이름도 이젠 산음분교가 아닌, ‘가루니 장승촌’(전통공예체험학교)이다. ‘가루니’란 단어는 단월면 관문인 삼거리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예전엔 단월면을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곳의 촌장이자 교장은 장승 조각가 채용병(43)씨다. 그가 이곳에 머물게 된 것은 단월면 사람들의 의지와 채씨의 뜻이 맞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모두들 도시로 빠져나간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특색있는 마을 만들기에 나섰고, 여러 방안을 논의 끝에 옛부터 매년 마을 입구 등에 세웠던 장승을 되살려 단월면을 장승마을로 만들기로 했다.
이후 전문 장승 조각가인 채씨에게 장승제작을 주문한데 이어 면에서는 산음분교를 단월 전통문화학교로 활성화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후 채씨에게 이곳의 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오랫동안의 공방 생활을 접고 약 4년전 이곳에 터를 잡았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건설계 쪽에서 일을 하던 그가 장승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1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도시생활에 심각한 회의를 느끼게 됐고 이곳저곳을 방황하며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머물게 된 춘천에서 서각을 배우게 된 그는 장승을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다니는 목조각가를 만나게 됐다.
"당시 그의 목에 걸려있는 장승을 보는 순간 어떤 마력 같은 걸 느꼈어요. 잘 생긴것도 아니고 인상이 좋은 것도 아닌 그 장승의 모습이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그 길로 그는 장승 만드는 일에 전문적으로 뛰어 들었다. 그러나 장승을 전업으로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어 배우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특히 연장을 다루는 법은 무엇보다 힘들었다. “장인들을 찾아다녔지만 제대로 연장쓰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아 2~3년간 고생을 꽤 했죠. 특히 기성품으로 나온 연장은 쓰기가 불편해 직접 연장을 만들어야 했고, 그러다보니 강한 쇠를 찾아 전국을 헤매다녔지요.”
결국 재미로 시작한 그의 장승조각에 사람들이 하나 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행사장 등에서 작품 제작을 주문해오기도 했다. 또 장승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이렇게 해서 벌써 10여년, 그는 이제 장승 조각가로 유명해져 있다.
그렇다면 그를 이토록 빠져들게 했다는 장승의 매력은 무엇일까. “장승은 장구한 세월을 거쳐 이 땅을 지탱해 온 오천년 역사가 빚은 우리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몰골입니다. 못 생기면 못생길수록, 미우면 미울수록, 제멋대로인 못난 몰골이 오히려 순박하고 소박하게 보이며 옛부터 백성들과 벗하여 서로의 아픔을 덜어 주며 우리 민족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는 서민들의 마음을 담은 거울인 동시에 만드는 이의 '생각의 얼굴'이기 때문이지요."
채씨는 ‘가루니 장승촌’에서 장승을 다시 인간의 삶 가까이로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 하나가 교육 프로그램인 ‘장승깎기 체험학습'이다. 장승의 유래와 의미 등에 관한 이론강의와 연장 사용법, 장승목걸이 만들기, 솟대 만들기 등 총 3교시로 나눠 진행되는 이 수업은 옛 사람들과는 달리 장승을 가까이서 접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전통체험 프로그램이다. 대학생들이나 동호회, 청소년 단체, 외국인들이 20여명 단위 단체로 오거나 주말 가족 단위로 찾아온다.
그러나 채씨는 이곳에 오고자 하는 학생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모두 받을 수 없어 고민이다. 수용할 수 있는 규모가 작은 것도 문제지만 화장실 등 시설 개보수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단월면에서 이곳을 ‘장승마을’의 산지로 생각해 임대료를 내주고 있긴 하지만 시설투자는 모두 채씨의 몫이다. 그러나 공방에 있을 때보다 그의 수입은 5분의 1 정도로 줄어들었고 개보수해야 할 시설물은 많고, 고민이 이만저만한게 아니란다.
그는 소망이 있다면 전승공예를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고등과정이나 전문대 과정의 학교를 이곳 양평에 짓는 것이란다.
“우리나라 생활공예나 전승공예는 뛰어난 것이 많아요. 세계속에 내놓아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전통예술분야인데 여기에 대한 지원이 너무나 부족해요. 그러니 청소년들이 전승공예를 접할 기회가 자꾸 줄어들게 되죠. 목가구, 한지, 알공예 등 우리 전통공예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전문적으로 배우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뒷 이야기
며칠전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 옛 산음분교에 자리잡고 있는 ‘가루니 장승촌’(전통공예체험마을)을 취재하기 위해 양평을 찾았다. 지난달 ‘전통무예촌’ 취재차 들른 이후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지난번 방문때는 알지 못했던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마을을 찾은 손님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다름아닌 장승이라는 것을.
마을 초입에서도, 마을 한가운데서, 동네를 가로지르는 비슬 고개에서도 장승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단월면을 ‘장승마을’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가늠케 하는 풍경이다. 이곳에는 현재 6백여개의 장승이 서 있다.
이곳이 ‘장승마을’로 알려진 것은 주민들에 의해서다. 산업화.도시화 바람과 함께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갔고 노인들만이 고향을 지켰다. 그러다 이곳이 자연경치 때문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은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뭔가 색다른 것을 보여주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후‘장승마을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기금도 마련해 마을 특화사업에 발벗고 나서 오늘의 ‘장승마을’ 단월면을 있게 했다. 이는 마을 주민들과 공무원들의 뜻이 뭉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농산물이나 특산물 등을 특화해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는 지자체가 하나둘 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단월면처럼 자연과 전통문화를 활용하고, 폐교가 된 학교를 활용해 마을알리기에 나서는 사례는 시골마을 공동체를 되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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