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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지초당'에서 추사의 말년 작품을 보다

 

추사 김정희(1786~1856년) 선생의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이면서 학자, 문장가로 이름이 높은 추사였지만, 혼란으로 치닫던 조선사회는 그도 희생양으로 삼았다.

 

곧은 성품과 높은 학문, 바른 소리를 잘하는 추사는 주변의 시샘을 받아 제주도에 이어 북청 유배를 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추사가 1852년 10월부터 1856년 서거하기까지 말년에 4년간 과천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곳은 아버지 김노경이 마련한 별장인 과지초당으로, 이 기간 절정기에 달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과천시는 두차례에 걸쳐 과지초당 유적지를 조사한 후 해당 부지를 매입해 그 옆에 지상 2층, 지하 2층 연면적 220㎡ 규모로 추사박물관을 짓고, 일대 도로명도 ‘추사로’로 하면서 과천의 문화인물로 추사를 기리고 있다. 추사박물관은 지난 1일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추사의 한국전-추사의 과천 시절’을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던 말년에 남긴 추사의 작품이 이번 전시에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박물관에 앞서 도달한 곳은 추사 선생의 온정이 남아 있는 과지초당(瓜地草堂)이다. 과지란 오이밭이라는 의미로, ‘작고 별 볼일 없는 집’이라는 뜻이다. 검소하면서도 청빈하게 학업을 하며 소일하는 집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과지초당은 1824년 생부 유당 김노경이 한성판윤 시절 청계산 북쪽 옥녀봉 아래에 마련한 별서(別墅, 별장) 겸 묘막(墓幕)으로 마련한 곳으로 이곳에 들리면 김영원 조각가가 만든 2미터 높이의 추사 동상이 “어서 오시라”며 반갑게 맞이하는 듯 했다.

 

현 과지초당은 2007년 12월 복원한 것으로, 정원과 숲이 빼어나고 연못이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추사는 절정의 역량을 보이며 북청 유배에서 풀려난 1852년 8월부터 1856년 10월 10일 별세할 때까지 머물면서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다.

 

이 기간 동안 추사는 25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추사박물관은 이 작품들을 지하 1층 전시실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일반 관람객은 받지 않고 있으며, 온라인을 통해 중계 방식으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 남겨진 추사의 작품에서 ‘추사 이후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 무르익은 추사의 예술세계를 볼 수 있다.

 

추사의 청관산옥(淸冠山屋)은 과천시절 추사의 당호의 하나로 ‘청관산옥만음’에서 그는 “세 칸 낡은 집이나마/ 비바람 피할 수 있네./ 빈산에 한 선비가/ 홀로 이소(離騷)를 뒤적이네”라고 했다.

 

 

이밖에도 ‘판전(板殿)’, ‘파공진상(坡公眞像)’, ‘송백인 오언시’, ‘칠언고시 행초4구’, ‘유희삼매첩’ 등 추사의 명품도 함께 선보인다.

 

그 중 서울 봉은사(奉恩寺) 판전에 걸려있는 현판 글씨의 탁본인 판전(板殿)은 추사가 돌아가시기 전 3일 전에 쓴 것으로 전하는 김정희의 마지막 절필(絶筆)로 알려져 있다. 흔히 추사의 어린 시절 쓴 글씨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하여 일명 ‘동자체(童子體)’라고 전해지는 점이 특이하다.

 

파공진상(坡公眞像)은 추사가 소동파의 초상을 그리고 스승 옹방강이 쓴 7언시를 좌우에 배치한 작품으로 추사는 정희, 완당, 추사 등 인장을 3개나 찍는 특이함을 보였다.

 

송백인 오언시(宋伯仁 五言詩)는 13세기에 활동한 송백인의 시 산하(山下)를 추사가 쓴 것이다.

 

유희삼매(遊戱三昧) 등 완당집고첩은 추사가 김여균에게 써주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첩으로 ‘옛것을 고집하지 말라’고 당나라 유차가 한유에게 써준 시 등을 썼다.

 

허홍범 학예사연구사는 “이 전시회가 과천시, 예술의 전당, 예산군, 제주 세계유산본부 등 추사 4개 기관이 협약을 맺어 공동사업으로 진행하는 특별전으로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김종천 시장은 “이번 특별기획전은 추사와 과천이 어떤 인연이 있는지사를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과 추사애호가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특별기획전 출품 작품은 9월 8일부터 추사박물관 홈페이지(https://www.gccity.go.kr/chusamuseum/main.do)를 통해 온라인 전시(VR)도 감상할 수 있다.

 

◇ 추사 김정희는…

 

 

조선조 훈척 가문의 하나인 경주 김문에서 병조판서 김노경과 기계 유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는 추사는 1819년 문과에 급제해 암행어사와 예조 참의·설서·검교·대교·시강원 보덕을 지냈다.

 

1830년 생부 김노경이 윤상도(尹商度)의 옥사에 관련된 혐의를 받아 고금도로 유배됐다가 순조의 특별배려로 귀양에서 풀려난 판의금부사로 복직됐다.

 

이후 헌종이 즉위한 후 다시 윤상도의 옥사에 연류돼 1840년부터 9년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가 헌종 말년에 귀양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1851년 친구 관계인 영의정 권돈인의 사건에 연류돼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됐다가 2년만에 풀려난 추사는 그는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하면서 학예(學藝)와 선리(禪理)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 경기신문/과천= 김진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