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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窓 ] 사람이 눈풀꽃보다 아름다워

 

노벨상은 태생에서부터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죽음의 장사꾼’으로 불린, 다이너마이트로 돈을 번 알프레드 노벨의 이름을 딴 상이어서만이 아니다. 이 상이 제정된 이래 수상자의 적합성 여부가 자주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다섯 부문 가운데 과학 분야, 그러니까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은 그나마 덜하다. 하지만 평화 분야는 과학만큼 객관적이지 않다. 유럽이 독점해온 노벨평화상이 유럽 바깥에서 찾은 최초의 수상자가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라는 것 아닌가? 우리 역사에서는 을사늑약에 앞서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성사시킨 배후에 그가 있으니,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는 건 당연지사다.

 

문학 분야 역시 그렇다. 문학이야말로 주관성이 지극히 뚜렷한 활동인 까닭이다. 하여 최초로 순전히 자의에 의해 노벨상을 거부한 인물이 문학 분야에서 나왔다는 건 어찌 보면 우연이 아니겠다. 거액의 상금을 가볍게 무시한 이 괴짜(?)는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 장 폴 사르트르. 1964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노벨상 수상자가 지나치게 서구 편향적’이라는 것과 스스로 ‘제도권에 의해 규정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거절했다. 물론 호사가들은 ‘라이벌인 카뮈가 먼저 받은 것에 자존심이 상해서’라고들 입방아를 찌어댔지만 말이다.

 

‘유럽 남성 소설가’에게만 끈질기게 추파를 보내던 노벨문학상은 이후 비유럽권과 여성에게도 드물게 눈길을 주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흑인 여성 소설가’를 뽑은 게 1993년의 일이다. 《소중한 사람들》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의 토니 모리슨이 그 영광의 인물인데, 안타깝게도 작년에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많은 부분이 멈춘 올해, 그래도 노벨상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았다.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스 글릭이 선정되었다. 이로써 스웨덴 한림원은 다시금 ‘비유럽·여성’을 뽑았다는 안도감에 취하겠지만, 그래봤자 그 수는 전체의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 ‘비유럽·여성’은 여전히 백인이다.

 

그럼에도 모처럼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시야말로 문학의 성감대라 하지 않던가? 시를 통해 인간은 날것의 감정과 만난다. 감정은 지성보다 힘이 세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대단하지만 두루 대단하다고 인정받지는 못했던” 루이스 글릭의 시를 아직은 쉬이 접하기 어렵다. 눈 밝은 류시화 시인이 진작에 우리말로 옮겨놓은 게 한두 편 있을 뿐.

 

그 안에서 우리는 평범하기에 비범한, 약하기에 강한 인간과 마주한다. 고통과 상처로 범벅이 된 삶이지만,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끝내 다시 일어서는 <눈풀꽃> 같은 사람을 본다. 아하, 이래서 코로나 시대가 그녀를 불러냈나 싶다. 그 어느 때보다 위로와 용기가 고픈 우리이기에. 하늘이 시인을 허락한 건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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