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가로막혀 재능을 한껏 펼치지 못한 예술가가 있다. 일제강점기 나라의 운은 기울었고 그는 자신의 재능을 가슴에 묻어둔 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투사로서의 삶은 급박하게 돌아갔고 잦은 수감생활, 험난한 여정으로 몸은 병들어갔다. 옥고로 병약해져 하릴없이 방안에 머무를 때면 가슴에 맺힌 시를 썼는데, 그때 완성한 시가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진 <황혼>, <청포도>, <광야> 등이다.
그는 바로 시인 이육사이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가장 한창때인 41세에 순국하기까지 현대시 36편과 시조 시 1편, 한시 3편을 남겼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아 재능을 펼쳤더라면 우리는 <청포도>, <광야>와 같은 빼어난 절창을 훨씬 더 많이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일찍 생을 마감했고 살아생전 자신의 이름으로 낸 시집 한 권 가져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독립운동가 이육사 너머 시인 이육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가 남긴 시뿐 만 아니라 그가 남기지 못한 시까지 바라봐 주어야 한다. 시대의 아픔은 나라를 뺏긴 민족의 설움에도 서려 있고, 진정 나답게 꽃 피지 못한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넋에도 서려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후 유가족과 지인들은 흩어져 버린 그의 시들을 모아 시집을 엮어주었다. 하지만 이육사의 작품과 그와 관련된 유물들은 아직 수집 중이다. ‘내 시를 쓸지언정 유언은 쓰지 않겠소’라 했던 시인의 말은 그대로 그의 삶이 되었고, 직접적인 육성이나 입장이 담긴 글은 지상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감시의 눈초리가 매서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가 가슴에 간직하고 있던 진짜 의중과 소망은 수수께끼처럼 남아 그저 시어로써 간접적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이육사는 뛰어난 서예가이기도 했다. 현존하는 단 한 점의 붓글씨 작품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水浮船行(수부선행)’이라는 작품이며 ‘물이 배를 띄워서 가게 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해 준 외삼촌에게 감사의 뜻으로 쓴 글씨이다. 어쩌면 이 글씨를 썼던 당시, 시인은 긴박한 상황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품에 인장이 빠져 있는데 인장을 챙길 만한 여유와 경황이 없었을 거란 추측이다.
글씨는 큼직하고 힘차다. 시대를 온몸으로 헤쳤던 시인의 결연한 의지가 힘차게 꺾여서 휘도는 붓놀림에 담겼다. 그는 독립운동을 위해 배를 타고 만주와 조선을 오고 갔다. 투사로서 감당해야 했던 머나먼 여정이 때론 그를 아프고 고단하게 했다. 글씨가 끝나는 지점에 붓은 메마르고 갈라져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각박한 세상이었지만 그가 온몸으로 견디고 있던 날카로운 고통은 작품이라는 형태로 새롭게 태어났다.
성북구에 위치한 문화공간 이육사는 이육사문학관 교류전 ‘바다의 마음’을 통해 이육사의 유일한 휘호 ‘水浮船行(수부선행)’을 전시하고 있다. 이 휘호는 이육사가 남긴 유일한 붓글씨임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통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존재는 2년 전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그때도 많은 이들의 관심이 주목되었다. 전시장을 방문하니 공간 전체가 바다처럼 느껴지도록 구성되어있었고 그 중점에 수부선행이 걸려 있었다. 바다처럼 차갑고 시린 기운이 글씨에도 서려 있었다.
이육사문학관 손병희 관장은 수부선행을 독립운동의 관점을 초월하여 해석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배가 나아가려면 물이 있어야 하듯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육사가 말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비록 해방은 이루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시대의 아픔이 존재한다. 외부적인 조건에 가로막혀 진정 나다운 나를 펼치지 못하는 숱한 이들의 목소리에 우리 사회가 좀 더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