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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택배, ‘요금 인상’ 빠진 정부 대책은 공염불

정부·정치권의 악역(惡役) 기피가 문제의 핵심

  • 등록 2020.11.16 06:00:00
  • 13면

정부가 내놓은 택배기사 과로사방지대책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거세다. 문제의 본질인 ‘택배비 인상’ 해법을 회피하고 있어서 ‘격화소양(隔靴搔癢)’이라거나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마저 일고 있다. 즉 택배기사 장시간 근무의 구조적 핵심요인 해소는 어물쩍 뒤로 미뤄둔 대책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높다. 소비자들은 상황을 이해하고 협조할 용의가 있는데, 정부·정치권이 악역(惡役)을 너무 기피하는 게 아니냐는 힐난마저 나온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표한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은 근본 해결책이라기엔 어림없다. 뜨거워진 사회문제에 관한 관심을 증명하려는 면피 수준이라는 비판이 인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택배 수수료 인상’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해법을 유보한 채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평가인 것이다.

 

정부 대책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니다. 택배기사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주 5일제 근무, 하루 최대 작업시간 설정, 밤 10시 이후 배송제한 등으로 근로시간과 시간대를 줄이기로 했다. 택배사와 대리점의 택배기사에 대한 갑을(甲乙) 관계 문제 해소, 홈쇼핑업체 등 대형 화주에게 지급되는 리베이트 관행(이른바 백마진) 등 불공정 관행 개선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다 필요한 조치이긴 하다.

그러나 ‘택배기사 과로’ 문제가 결국은 노동자들의 수입구조와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정직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택배 배송료와 택배기사가 받는 수수료는 2002년 각각 3천265원과 1천200원에서 지난해 2천269원과 800원으로 크게 줄었다. 이런 현장의 사정이 택배 노동자 과로 문제와 연결되고 있다. 수수료가 하락할수록 기사들은 소득 유지를 위해 배송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무턱대고 ‘근로시간을 줄이라’고 한들 그게 무슨 보탬이 되나. 쏟아져 들어오는 배송을 그날그날 처리하지 못하면 중노동이 잠시 다음 날로 미뤄질 뿐, 과로 방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후 10시 이후 심야 배송제한이나 토요일 휴무제 도입 등의 대책도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생색내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조금만 일하고 굶주리라’는 게 도대체 무슨 신통한 대책인가.

 

‘백마진’ 문제는 일종의 가격 경쟁의 산물이어서 무작정 ‘불공정행위’로 치부하는 정도로는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 낮은 산재보험 가입률 문제도 그렇다. 이미 자동차보험이나 실손보험에 가입한 택배기사들이 추가 부담을 원치 않는다는 현실적 이유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비자들은 택배기사 처우 개선을 위해 일정 비용을 추가로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권익위 조사에 따르면, 택배 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배송 지연’을 감내하거나 ‘택배비 인상’에 동의한다는 답이 10명 중 7명 이상이었다.

 

노동자·업계·정부 한 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다음 달 구성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 협의회’에서 ‘택배비 인상’을 포함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전태일 열사가 노동 현실 개선을 외치며 분신한 지 50주기가 됐는데, 먹고살기 위해서 중노동에 내몰리다가 죽음에 이르는 일이 여전히 비일비재하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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