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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1교시에 체육을 하면 생기는 일

 

초등학교 같은 학년에서는 비슷한 일주일 시간표를 운영한다. 반은 달라도 하루에 배우는 과목이나 내용은 동일하게 맞춘다. 매년 2월 즈음에 교사들이 모여서 한 주 시간표를 어떻게 운영할지 정하거나, 학년 부장이 반별 시간표를 결정해서 공유하면 다른 교사들이 틀에 맞춰 비슷하게 짠다. 드물지만 매주 회의를 통해 모든 시간표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일 년에 한 번 시간표를 정하든, 매주 한번 시간표를 정하든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규칙이 있다. 체육은 가급적 1교시를 피하라. 길지 않은 교사 경력이지만 체육을 1교시에 고정해 둔 시간표를 보거나 짠 적이 없다. 아침부터 운동장에서 수업하는 장면을 보는 건 드문 일이다. 체육 전담교사나 스포츠 전문 강사가 아닌 담임교사가 체육 수업을 하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체육은 보통 점심 먹고 잠이 쏟아지는 5교시나 햇빛이 너무 강하지 않은 오전 어느 때에 하는게 일반적이다.

 

처음 교사가 되어서 동학년 회의에 들어갔을 때 50대 초반의 교사 경력 30년 차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귓가에 생생하다. "1교시에 체육하면 애들이 너무 산만해져서 안돼."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격렬한 활동 후에 아이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앉아서 자리만 채우던 나도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체육은 사람, 특히 어린 아이를 산만하게 만든다는 말에 아무런 의심이 들지 않았다. 내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시절이라 더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체육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건 존 레이티 의학 박사가 쓴 <운동화 신은 뇌>를 읽고 나서 부터다. 책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심박수를 180 이상으로 높이는 운동은 뇌에서 뉴런을 대량으로 생산하는데 지대한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공부하기 전에 격렬하게 운동해라'이다. 가벼운 운동도 아니고 숨이 차는 운동인데 피곤하고 지치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존 레이티 박사가 든 연구 사례는 미국 일리노이 주에 위치한 네이퍼빌 센트럴 고등학교와 미주리 캔자스시티에 있는 우드랜드 초등학교이다. 미국에서 하위권에 속하던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 수업 시작 전 체육시간을 만들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아침마다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40분 이상 실시하자 건강 상태, 학업 성적 모두 급격하게 상승했다.

 

한 학기 동안의 아침 운동을 지속한 뒤 네이퍼빌 고등학교는 과학과 수학 부분에서 미국 내 최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했다. 특정 몇 명 학생의 성적이 아니라 학교 평균 성적이 급상승했다. 우드랜드 초등학교는 학생 대부분이 정부에서 지원을 받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아침 운동 뒤 학교 폭력 건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학습 능력이 향상 되었다. 교사들의 수업 내용은 달라진 게 없고 아침에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신체를 움직였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민족 사관 고등학교가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운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권도, 검도, 국궁, 태극기공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30분간 수련한다. 민사고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학교라 학생들은 이미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가진 채로 입학한다. 뛰어난 아이들에게도 아침 수련 시간은 뇌를 발전 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여기에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한 신체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코로나와 미세먼지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체육 수업, 시간표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체육 시간을 1교시로 끌어왔다. 매일 등교도 못하는데 매일 아침 운동은 언감생심이라 체육이 든 날에만 운동으로 하루 수업을 시작한다.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을 크게 한바퀴 뛴 다음 수업 시간 곳곳에 뛰어다닐 수 있는 간이 게임을 넣는다. 이렇게 40분이 지나면 모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교실로 들어갈 수 있다.

 

아직 아침 체육 수업으로 인한 아이들의 드라마틱한 변화나 향상을 느끼지는 못했다. 새로운 습관이 생기려면 60일에서 90일 정도는 걸린다고 하는데 띄엄띄엄 두달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굳이 달라진 점을 찾자면 우리반 친구들의 눈빛이 변했다. 운동하고 나면 수학이나 국어로 하루를 시작할 때보다 또랑또랑한 눈빛이 오래 간다. 어른들의 우려처럼 체육이 아이들을 산만하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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