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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 국립현대미술관의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전

 

 

필자와 같은 세대는 독립이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본 적이 없는 누군가에게는 그야말로 새파랗게 젊은 세대이다. 하지만 문화예술계 현장에서 십여 년간 일하다 보니 문득 내 삶의 작은 일부나마 투사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장에서 나는 싸우듯이 일해왔다. 그간 몇 차례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었고 변화의 물결을 타기 위해 혹은 그것에 맞서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 같다. 한낱 미약한 문화예술계 종사자에게 정치적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했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내 작은 열정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필자와 같은 창작자나 기획자들은 속에 맺힌 것들을 표현하지 못하면 존재가치를 잃고 만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가슴을 치며 안달하는 이들만이 진정 살아있는 창작자들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문화와 예술은 공동체와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이다. 공동체를 가꾸기 위해 서로 모이기에 힘써야 하고, 문화와 예술은 그러한 도모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언뜻 들으면 옳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결국 문화와 예술을 정치로 옭아매기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예술 분야에서는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 공동체를 염려하는 마음은 그러한 열정의 한 일부로써 존재한다.

 

그건 결코 이기적인 태도가 아니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로서 지녀야 하는 자연스러운 마음가짐이며 순리이다. 현장에서 십수 년 일해 오면서 이 분야에서 종사하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을 두루 만나왔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도 문화와 예술로써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굳이 이들에게 공동체를 최우선의 가치로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이들의 본연의 의지를 훼손시키는 잘못된 정책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을 관람하러 갔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근현대미술 작품들을 집대성한 전시였다. 미술관의 2층과 3층, 회랑에 이르는 넓은 공간을 할애한 전시는 한번 둘러보는 데만도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이 작은 나라에서 숱한 예술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전시는 여실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나 현장에서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논할 때면 스스로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묻곤 했다. 역사의 굴곡 속에서 자기중심을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표류했던 예술가들의 행적을 비판하기도 했다. 인상파, 앵포르멜, 단색화, 극사실주의, 민중미술 등 짧은 시간 안에 우리의 미술사가 거쳐 갔던 사조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만큼 새로운 것을 익히고 체화시키려고 그들은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하지만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가끔을 반문하고 싶었다. 우리의 정체성이 반드시 정갈한 한두 개의 문장으로 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다. 굴곡이 있었다면 있었던 대로, 이리저리 표류했었다면 표류했던 대로 선배들의 다양한 행적을 모두 존중하고 품으면 안 되는 것일까. 오히려 우리들은 예술은 더욱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우리나라 미술 작품들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한 의미에서 이와 같은 전시가 기획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감격스러웠고 문화예술계 종사자로서 자존감을 조금은 회복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시에서 주목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면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나타난 사조들을 보다 세분화해서 보여줌으로써 얼마나 다양한 경향들이 나타났는지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미술사는 그간 단색화와 민중미술의 대결구도로 주로 논의되어온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는 그러한 틀과 경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했던 예술가들의 행적을 담고 있었다. 일례로 전시는 1980년대 단색조 회화와 민중미술 양쪽 중 한 노선을 강요받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소그룹으로 활동했던 이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문화예술 정책들을 풀뿌리민주주의의 부흥이라는 명목 아래 가두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로 방향이 잘못된 정책들은 치유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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