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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도깨비

 

영월 동강을 끼고 걷다 올려다 본 깎아지른 바위의 민낯이 영락없는 도깨비 얼굴이다. 도깨비 뿔 삐딱하게 박은 채 우글쭈글하게 인상을 찡그린 모습이 마치 강줄기를 호령하듯 쩌렁쩌렁 호탕한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도 보여 엉겁결에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고 말았다. ‘비록 코로나19의 기세에 눌려 도망쳐왔지만 어쨌든 힘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제발 살맛나게 해주세요.’라며 빌고 또 빌어본다.

 

도깨비를 떠올린 순간 나는 왜 겁부터 났을까, 아니 왜 무언가를 빌어볼 생각을 했을까. 그건 아마도 어린 날의 경험과도 관계가 있을 듯 보인다. 억지떼라도 쓰는 날이면 어른들은 여지없이 ‘도깨비가 잡아간다.’라며 겁을 주기도 하고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도깨비 목소리는 늘 무섭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들려주었으니 도깨비라는 존재가 무서웠을 수밖에. 또한 동화 속 도깨비는 말만 잘하면 도깨비방망이로 대궐 같은 집도 지어주고 보물도 만들어주고 부자도 되게 해주고 나쁜 사람 벌까지 줄 수 있었으니, 나에게 도깨비는 어쩌면 두려우면서도 큰 힘을 가져 신비스러운 이중적인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신의 것도 아니고 인간의 것도 아니고 동물의 것도 아닌 것으로 경험된 것. 즉 해괴망측하고 일상적이지 않은 유별난 것으로 경험된 것에 붙여진 이름이 곧 도깨비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부터 어른들은 하는 짓이 어중간하고 실속도 없이 일만 벌려대며 주변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드는 사람을 ‘낮도깨비’ 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쩌면 한국의 도깨비는 막강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무서운 존재도 아닌 해학적이기도 하고 어설프고 어리숙한 속성을 가진 듯도 보인다.

 

요즘은 유난히 그런 도깨비에 홀린 듯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신종바이러스라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과 더불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버린 ‘코로나19’의 공격. 온 국민이 집 안으로 집 안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는 상황. 친구와도 거리를 두고 이웃과도 대면 대면하게 되고 친지들과도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 우울한 분위기. 학생이 학교를 갈 수 없고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람들이 의도적 개인주의를 따르며 집 안에서만 어슬렁거려야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슬로건으로 내건 정부와 어떤 방법으로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개개인의 노력까지 뒤섞인 솟구치는 아우성이라니.

 

밤새 거나하게 술에 취해 도깨비와 한 판 승부를 벌이고 다음날 아침 잡은 도깨비를 확인하러 어젯밤 그 장소에 찾아가보면, 어이없게도 도깨비는 온데간데없고 피 묻은 부젓가락, 절구 공이, 빗자루가 있어 허탈해하던 그 옛날이야기 속 그들처럼, 이쯤에선 그만 어이없게 이기고 싶다. 마치 허깨비만 남긴 도깨비처럼 ‘코로나19’ ‘별 것도 아니었네.’ 라며 그렇게 털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도 해보고 싶다.

 

영월 동강 깎아지른 바위산을 돌아 나오며 유년시절 나의 마음을 한 동안 지배했던 도깨비에게 다시 한 번 간곡히 소원해본다. 그 누구라도 좋으니 지금은 당신의 도깨비 방망이가 필요할 때입니다. 그 도깨비 방망이 선하게 사용하여 부디 창궐하는 바이러스도 이겨내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동화 속 결말처럼 끝나지기를. 그리고 새해에는 온 국민 웃음이 만연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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