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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판관 포청천보다 테레사 수녀님

 

아이 하나가 엉엉 울면서 내게 다가온다. 보통은 다른 친구가 우는 아이를 토닥이며 데리고 온다. 눈물을 쏟는 아이를 달래며 자초지정을 묻자 친구 A가 자신을 때리면서 욕했다고 말한다. 한참 성토대회를 열던 아이는 이때부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낸다.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고 폭력을 쓰는 건 선생님께 혼나야 하는 일이니까. 친구가 얼마나 혼날지, 내가 어떤 판결을 내려줄지 기대감이 차오른다.

 

막상 A를 불러서 삼자대면 해보면 나쁜 행동을 저지른 나름의 이유가 있다. B가 먼저 놀리고 도망쳤거나, B가 먼저 때렸거나, B가 예전 어느 날에 자신을 놀리면서 때렸거나. 보통은 셋 중 하나의 이유로 귀결된다. 장난치려고 먼저 때리는 경우는 있어도 아무 이유 없이 욕하면서 건드리는 경우는 드물다. 과거의 어떤 사건이 마음 속에 남아 있다가 갑자기 행동으로 드러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상담하면서 두 아이 모두가 잘못한 점을 발견했을 때 담임교사인 나는 홀가분한 마음이 된다. 잘못의 경중을 크게 따지지 않아도 되고, 서로 사과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는 걸로 종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지만 본인들도 잘못한 점이 있기에 대체로 친구에게 사과한다.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나는 내 할일을 다 한 셈이었다.

 

올해도 지금껏 아이들과 해온 상담 방식을 고수할 생각이었다. 문제 상황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옳고 그름의 판결을 내린 다음, 둘 사이를 중재하는 일종의 법관 같은 방식이다. 학생들의 잘잘못을 따질 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공정하게 판단해서인지, 아니면 중간에 아이들이 말하는 걸 끊지 않고 들어와서인지 아직까지는 아이들 다툼으로 문제가 커진 적이 없다. 문제가 없으면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담의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정혜신 정신의학박사의 책 <당신이 옳다>를 읽고 나서다. 갈등은 마음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불안정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때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열 마디 말보다 기울어진 마음을 원래의 자리로 끌어오는 공감이 중요하다. 저자는 공감을 심리적 CPR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음의 틈이 보이지 않던 사람도 진정한 공감을 받으면 틈새가 열린다.

 

나는 아이들이 갈등을 겪어서 찾아 오면 '무슨 일이니', '누가 그랬니', '왜 그랬니'를 주로 물었다. '그때 너의 마음은 어땠니?', '지금 너의 마음은 어떻니'를 질문할 때도 있었지만 드물었다. 법관이 판단을 내릴 때처럼 마음보다 육하원칙이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나와 아이들의 상담 사이에는 공감이 빠져있었다. 사람 마음은 다른 이의 말로는 절대 바뀌지 않고, 오직 내면에서만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공감 없는 판결은 겉으로는 강제성이 있지만 아이들의 마음까지 바꾸진 못했을 거다.

 

일상 대화를 할 때는 아이들의 기분이나 마음이 어떤지를 곧잘 묻는 편이다. 아이들은 젊은 교사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편이고 이런 장점을 십분 활용해서 이런 저런 말을 건넸다. 정작 갈등 상황처럼 마음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순간에는 매섭고 논리적인 사람이 됐다. 두루뭉술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하나하나 따져서 일말의 찜찜함이나 억울한 사람이 없는 게 낫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막상 어린시절을 떠올려보면 시시비비를 공명정대하게 가려준 선생님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신 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이 내 마음을 알아줬다는 생각이 들면 나를 괴롭힌 친구가 혼나지 않아도 억울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누가 먼저 때렸는지, 놀렸는지가 아니라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죽일듯이 다투면서 싸워도, 서로 사과한 다음 돌아서면 웃으면서 함께 뛰어나간다. 울던 게 진정되면 얼른 나가서 다시 놀고 싶은 마음에 빠른 사과를 주고 받기도 한다. 말랑말랑한 마음의 아이들에게는 판관 포청천처럼 근엄한 심판자보다 테레사 수녀님 같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어른이 더 필요한 듯 싶다. 교사로서도 판결을 내렸을 때보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다 스스로 잘못을 깨달았을 때가 더 마음이 편했다. 올해는 판결보다 공감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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