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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상으로 돌아간 미국, 정상? 그게 무얼까?”

- 새로운 협력주의를 향해

 

“내가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었다. 첫 여성 부통령도 나왔다. 이번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식은 지난 2백년 동안 지속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오바마의 말이었다.

 

이어 부시가 입을 열었다. “우리 세 전직 대통령이 이렇게 한 자리에 서서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자체가 바로 그런 전통의 제도화가 존재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자 클린턴이 조금 길게 마무리한다. “정말 이례적인 사태였다.(트럼프 추종자들의 의회점령사건을 의미.) 우리 모두는 미국이 ‘정상’(normalcy)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도대체가 전적으로 비정상적인 도전이었다. 정상회복이 된 것은 이걸 잘 다룬 결과가 아니겠는가? 정말 짜릿할 정도로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전직 대통령들의 합창, 평화적 정권교체

 

 

오바마, 부시 그리고 클린턴 세 전직 대통령이 취임식 다음날인 지난 1월 21일 저녁 워싱턴 국립묘지 앞에 함께 서서 바이든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의 한 대목이었다. 트럼프 시기에 경험한 미국의 분열을 넘어 건국 이래 오랫동안 유지했던 민주주의의 전통이 미국의 정상상태를 지켜준다는 논조였다. 바이든이 수신자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 국민 전체를 상대로 한 발언이었다.

 

부시만 공화당 출신이지만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가리지 않고 선거 후유증을 딛고 “통합”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바이든은 취임사에서 “통합(unity)과 격조(dignity)”, 이 두 단어에 힘을 주었다. 그만큼 미국 내부의 갈등과 대립은 아직도 치열하고 정치적 입장이 다른 세력들끼리 주고 받는 언어들을 살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진보적 뉴스 매체 '지금 바로 민주주의를! Democracy Now!'의 뛰어난 진행자 애미 굿맨(Amy Goodman)은 이 “정상상태(normalcy)”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묻는다. 그건 헌법이 규정한 대로 선거에서 선출된 대통령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완성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미국의 국가적 본질에 대한 중요한 문제제기였다.

 

“정상”이라? 그게 뭔데?

 

이 질문을 받아든 하바드 대학의 흑인 철학교수 코넬 웨스트(Cornell West)의 대답은 명확했다. “이들 전직 대통령 셋이 집권했을 때 모두 다른 나라를 공격,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는 인류에 대한 범죄이다.(crime against humanity) 월가의 금융자본 편에 서서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제국의 본질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이게 이들이 말하는 ‘정상’이라면 끔찍한 일이 아닌가?”

 

이제 막 시작한 새정부에 대해 너무 강하게 나갔다고 여겼는지 코넬 웨스트는 결론 부분에 가서는 논조가 다소 누그러졌다. 바이든도 제국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전임 대통령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나, 그래도 파리기후 협약에 다시 들어가겠다고 밝혔고 서류미비 이민자들에 대한 사면 조처를 취했다는 점에서 일단 지켜보겠다고 덧붙인 것이다.

 

웨스트는 '인종문제야말로 중대한 사안 아니냐? Race Matters'라는 책을 써서 미국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 네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다. 그는 담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그것이 기성의 권력을 해체시키는 역할을 끊임없이 할 때 비로소 그 사회는 합리성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렇지 못하면 권력이 제공하는 담론에 휘말려 진실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권력이 말하는 “정상상태”라는 것도 그런 각도로 비판적인 독해를 해야한다는 논점이다.

 

애미 굿맨과의 대담에서 그가 특별히 강조한 바는 미국 정부가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자원을 부자들, 대자본의 몫으로 챙기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사회의 인종문제는 자본주의의 지배체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미국의 체제적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이런 정책적 사고가 만일 바뀌지 않는다면 미국의 움직임이 국제관계에서는 어떻게 작동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제국과의 협상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어떻게 펼쳐질지 우리로서는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 뭔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 내의 현안만 다루려 해도 골머리가 부서질 듯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말했듯이 “민주주의는 깨지기 쉽고 (Democracy is fragile.)” 미국 사회 내부의 통합을 가로막는 요인들은 너무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미국이 바로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서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 상대적으로 넓어질 수 있다. 미국은 과거처럼 강성제국의 일방적 헤게모니보다는 연성제국이 요구하는 협력주의를 통해 자신의 세계적 위상을 지켜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력이 과거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백번을 되풀이 말해도 평화협정체제로 가는 길이다. 이는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는 확실한 열쇠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체제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첩경인 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지금처럼 적대적 군사주의가 중심에 있는 한 해결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새로운 협력주의가 절실해진다.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할 경우 미국은 동아시아 정책에서 상당한 부담을 덜고 중국과도 대결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협력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전력을 다해 설득해내야 한다. 아니면 서로가 자해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 역시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방식의 협력주의가 미국의 자원을 미국 자신의 미래를 위해 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낼 것이며 COVID 19와 기후위기를 인류적 차원에서 공동대응하는 틀도 원활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날 협력적 리더쉽이 세계적으로 확보되지 못하면 인류는 끊임없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트럼프 정부 시절은 그런 위기를 증폭시킨 기간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말, “정상은 이런 것입니다”

 

물론 난관은 여전할 것이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며 우리를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수단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이를 상대로 해서 힘겨운 전략을 구사해야 하니 간단치 않다. 그러나 결국 우리 모두의 끈질긴 의지가 관건이다.

 

현실적 수단에 제약이 많은 우리는 아무래도 명분을 강조해야 한다. 이것이 국제적으로 공유되고 미국이 그런 흐름에 함께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바이든은 취임식에서 통합과 격조를 통해 모범적 본보기로 세계에 자신의 리더쉽을 보이겠다고 했으니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라고 말해야 한다. 미국의 명예에 명분을 주고 지금이 바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그 명예로운 역사적 해결에 최적의 시간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함께 존중하고 그 존중의 자세가 동아시아에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바이든 정부의 기여가 될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한다.

 

거대한 제국이 지금 내부의 갈등으로 엄청난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제국의 본질을 스스로 포기한 것은 아니다. 반면에 우리는 절실하다. 평화가. 통일이. 주저말고 움직여야 한다, 함께. 남과 북이 하나로 마음을 모아 제국의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진정한 “정상”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정상이라면 평화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은 더더욱 정상이라고. 그걸 향해 함께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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