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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창] 달의 시간과 비움의 영성

 

도시인의 삶은 하루살이다. 해 뜨면 전쟁하듯 일하고 해 지면 뻗고, 또 해 뜨면 전쟁하듯 일하고 해 지면 뻗는 처참한 삶이 반복된다. 그렇게 사는 데 지쳐서 도시를 떠나 농촌에 안착한 친구가 있다. 도시와 농촌의 가장 큰 차이가 뭐냐 물으니, 그곳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단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 아니냐, 삐딱하게 되받아치는 나에게 친구가 제법 현자처럼 말한다. 도시의 시간은 해가 기준이지만, 농촌의 시간은 달이 기준이라고.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친구의 입에서 절기가 술술 흘러나오더라. ‘입춘’이니까 농기구를 손봐야겠다는 둥, ‘우수’니까 고추 모종을 심어야겠다는 둥, ‘경칩’이라 개구리가 운다는 둥. 친구의 시간은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에 따라 보름 단위로 흐르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농부의 달력인 음력은 달이 지구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한 달로 친다. 반면에 도시인의 달력인 양력은 지구가 태양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이다. 한데 이 당연한 사실이 새빨간 거짓말로 치부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달과 해가 그 둘레를 돈다고 믿었던 고·중세다. 이른바 ‘지구중심설’이 진리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데, 누가 감히 딴죽을 걸 것인가?

 

서구 역사에서 천년이 넘도록 가짜 뉴스가 활개를 친 건 기독교(로마 가톨릭)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 교권이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했다’(여호수아기 10:12-13)는 성서 구절을 들먹이며 지구중심설을 옹호했다. 그래서 폴란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을 마음에 품고도 자신 있게 공개할 수 없었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야 자기가 쓴 책을, 그것도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간신히 세상에 나온 책을 힐끗 보았을 뿐이다.

 

요즘 한국기독교(개신교)를 보면 ‘중세 암흑기’가 저절로 겹쳐진다. 코로나 방역이 성공할라치면 꼭 기독교단체나 교회가 끼어들어 다시 감염률을 높이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한 개신교여론조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2020년 1월 한국개신교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약간 신뢰’한다는 비율이 32%였는데, 2021년 1월에는 ‘별로·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76%나 될 정도로 치솟았다.

 

교회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이웃이 죽든 말든 기어코 모이겠다는 종교적 열심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나? 성서의 증언을 빌면, ‘네피림’(창세기 6:4, ‘거인족’을 뜻함)의 욕망이 문제다.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 약자를 짓밟는 오만이 죄악이다.

 

그런 까닭에 오래전 다석 유영모 선생은 ‘태양을 끄라’고 일갈했다. 태양은 네피림을 상징한다. 태양이 사라져야 암흑 속에서 생명을 보듬는 달의 반란이 일어난다. 한국기독교는 언제쯤 이런 비움의 영성을 배울까? 설 명절이 코 앞이다. 설은 음력이 제맛이다. 설날의 달은 가장 어두운 그믐달이다. 새로운 시작을 품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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