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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의 시시비비] ‘양심 학대’ 시대의 청산

  • 안휘
  • 등록 2021.03.03 06:00:00
  • 13면

 

 

지난달 25일 이 나라 법치에 중대한 진화(進化)의 싹을 보여 준 소중한 판결이 있었군요.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가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으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사람에게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시중에 말이 많네요. 너도나도 병역 면제를 위해 양심을 악용하면 어쩔 거냐는 걱정이 흐드러졌네요. 분명 그런 우려는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양식을 언제까지 ‘짐승’ 수준으로 보는 편견으로 갈라 세우고 난도질할 건가요?

 

지난 2013년 2월 제대하여 예비역에 편입된 A씨는 2016년 11월부터 10여 차례나 예비군 훈련, 병력 동원훈련을 거부했습니다. 예비군법과 병역법 위반 혐의로 14번이나 고발돼 재판을 받아온 그는 훈련 불참 사유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른 행위’라고 강변해왔답니다.

 

우·무죄를 가른 법리적 판단기준은 ‘진실성’ 여부였습니다. 같은 날 대법원에서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은 B씨는 ‘유죄’ 판결을 받았거든요. B씨의 경우는 군사훈련과는 본질적 관련성이 없는 ‘권위주의적 군대 문화, 군대 내 인권침해·부조리’ 등을 병역거부 사유로 들었지만 ‘진실성’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앞서 얼마 전 병무청 대체역심사위원회는 사상 최초로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오모 씨의 대체역 편입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한 바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양심’을 평가하는 새로운 진보적 기준이 형성돼가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군역(軍役)에 관한 한 오랜 세월 양심을 무참히 학대하는 야만 시대를 살아야 했을까요? 첫째는 끊임없는 침략에 대항해야 했던 역사 때문일 겁니다. ‘양심’을 일일이 존중해 군역을 빼주고서는 전쟁을 감당할 수 없었을 거예요. 둘째는 평등(平等)의 가치 때문일 겁니다. 민주주의는 ‘자유’ 못지않게 ‘평등’이 존중돼야 하지요. 개인적 사유로 특정인에게 병역을 면제해주는 것은 일단 불평등한 일이니까요.

 

정말 중요한 이유는 비용의 문제였습니다. 병역거부가 양심의 발로인지, 술수인지를 가려내는 일엔 전문성은 물론 시간과 예산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 양심을 짓밟혀가며 국가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거나 도저히 안 돼서 거부했다가 감방살이를 한 억울한 희생양은 또 얼마였나요. 이젠 국가가 국민의 인권신장을 위한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러나 ‘양심 존중’ 흐름을 악용하는 몰염치한 반칙만은 철저히 막아야 합니다. 편법으로 병역을 회피하는 비리가 나오는 건 큰일 날 일이지요. 어쨌든,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회 곳곳에 깃든 야만적 ‘양심 학대’ 현상이 잘 청산됐으면 좋겠습니다.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길잃은 한 마리 양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귀한 성경 말씀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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