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날 때마다 가는 시골 텃밭(월말 농장)은 바다가 가까운 계곡 꼭대기에 있다. 처음 그곳은 수십 년 묵밭이어서 가시투성이 아카시아가 흐드러진 잡목 야산이었다. 포클레인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밭 모양을 갖춘 지 몇 해가 지났어도 여전히 어쭙잖다. 맞은편 계곡과 산자락, 바람 따라 춤추는 무성한 나무들을 편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숲멍을 때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몇 해째 다니다 보니 뻐꾸기·산비둘기·딱따구리 소리에 정이 듬뿍 들어버렸다. 텃밭 주변에는 까마귀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녀석들이 그 근처 나무들을 둥지 삼아온 세월이 길었던 듯하다. 저희끼리 어지간히 시끄럽게 수다를 떨기에 “이놈들이 저희네 집터에 무단히 들어왔다고 집세 내놓으라는가 보네” 하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언젠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삶은 달걀 두 개를 감쪽같이 훔쳐 간 일 빼놓고는 특별히 해를 입은 일은 없다. 까마귀에 대한 고정관념은 사납다. 전설 속에서는 불길한 새로 여기는 험악한 속설이 많다. 죽음의 전조, 전쟁의 예언 따위의 누명도 붙어있다. 민화에서는 악마, 마녀, 저주받은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까치는 그 반대다. 오랫동안 익조(益鳥)로 여겨졌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
북한산 등산길에서 자주 보던 소나무가 있었어요. 바위들 틈에서 자란 그 나무는 수령은 꽤 된 듯 여겨졌지만 척박한 환경 탓인지 키가 2미터도 채 못 되었지요. 어느 해인가 그 소나무를 무심히 살피다가 아래쪽에 달린 엄청나게 많은 솔방울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그 전과도 달랐고, 근처 다른 소나무하고도 전혀 달랐거든요. 나무의 영양 상태가 꽤 나쁜 편이었어요. 어느 해인가 지인의 농장에서 이상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고추밭을 돌아보다가 지인이 말했어요. “이 고추들 좀 봐. 내가 요즘 바빠서 물 주기를 소홀했더니 아래쪽으로 수두룩하게 고추를 달았어. 하찮은 생물도 종족 보존의 본능은 강한가 봐. 척박해지니까 새끼들을 이렇게 많이 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생률이 0.72명으로 떨어지면서 세계적 관심거리가 됐죠.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Ross Douthat)는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국의 급격한 출산율 저하를 놓고 “중세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당시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어요. 이대로라면 ‘지방소멸’은 불 보듯 뻔하고, ‘국가소멸’까지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지구촌의 인구는 매초 4.3명이 출생하
‘낙양(洛陽)의 지가를 올린다’라는 말이 있어요. 진(晉)나라의 시인 좌사(左思)가 지은 ‘삼도부(三都賦)’를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베끼는 바람에 종잇값이 올랐다는 뜻인데, 요즘으로 말하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정도겠죠. 예나 지금이나 책이 인류문화 전승 발전의 결정적인 매개체라는 건 상식에 속하지요. 그런데, 지금은 내용의 가치에 대한 공감 확산으로 책을 사는 독서인들은 희귀한 세상이 됐어요. 고(故) 김동길 교수가 쓴 칼럼 ‘3김(金) 낚시론’은 아찔했어요. 정곡을 찌른 이 용감한 글은 김영삼(YS)·김대중(DJ)·김종필(JP) 씨 등 이른바 3김이 1980년 초에 서로 대통령이 되려고 싸우는 바람에 ‘서울의 봄’을 무산시킨 원죄를 비판한 내용이었어요. 당시 칼럼을 접한 DJ는 “낚시하기 좋은 장소를 가르쳐 주면 그리하겠다”며 웃어넘겼고, YS는 “언론 자유가 보장된 사회라면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고 받아넘겼다는 일화가 있죠.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출판시장의 왜곡 현상은 참으로 심각해요. 한때 베스트셀러 조작 사건이 세상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었어요. 처음엔 출판사 직원들이 서점을 돌면서 사들이거나, 지인의 개인정보로 도서를 사재기해 베스트셀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씨와 성 정체성마저 혼란스러운 전청조 씨의 사기 혐의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 일변도네요. 웬만한 사람들은 실물 구경도 못 해 봤을 벤틀리 자가용을 척 사주는 남자(?)의 사기술에 정말로 남 씨가 일방적으로 당한 건지는 아직 아리송한 상태죠. 백억 대 고급주택을 비롯해 억 소리 나는 명품들 이야기에 구경꾼들은 대략 주눅이 잔뜩 든 분위기이군요. 대다수 국민에게는 꿈 얘기 같은 두 사람의 스캔들 뒤에 도사린 도무지 경계가 없는 인간의 욕망이 슬프게 느껴지네요. 타인의 욕망을 자극해 감쪽같이 속여내는 고도의 기술을 발휘하는 사기꾼들의 머리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갈수록 궁금해져요. 낯모르는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상상도 못 해 본 고가(高價)의 선물을 앞세워 유혹한다면 누군들 이를 거절할 재간이 있을까요. 지난 6월 검거된, 중국 항저우(杭州)에 근거지를 둔 최대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 조직 한국인 일당들이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인 ‘딥페이크(Deepfake)’를 활용한 신종 수법을 개발해 예행연습까지 했다는 소식에 모골이 송연해지는군요. 딥페이크는 적대관계생성신경망(GAN: Generative A
짐작은 했지만, 우리 사회의 우울증 확산이 예상보다 심각하네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최근 5년간(2018∼2022년) 우울증 진료 인원 현황’ 통계에서 지난해 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는 모두 100만744명으로 집계돼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군요. 2018년에는 75만2천976명이었으니 불과 5년 사이에 32.9%나 증가했다는 얘기에요. 최근 확산하고 있는 온갖 사회병리적 현상은 이런 변화와 과연 무관할까요? 사실 우리가 만끽하고 있는 문화의 악영향 중에 가장 고약한 것은 바로 조울증(躁鬱症) 조장이죠. 창작이라는 명분으로 양산되는 온갖 자극적인 유흥들, 특히 전자기술과 연계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수많은 오락이 거의 그렇잖아요. 인간의 희노애락을 극단적으로 충동하는 창작물일수록 흥행이 보장되는 시대에 1년 열두 달 하루 24시간 사뭇 인간의 오감을 뒤흔드는 문화가 범람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기분장애의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인 조울증은 기분이 들뜨는 조증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울증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의미에서 ‘양극성 장애’라고도 해요. 이 증상은 대략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양되면서 생기는 다양한 증상의 조증 삽화(Manic Epis
코로나19(COVID-19)가 한창일 적에 나온 우스갯소리 중에 ‘드디어 인류 마지막 종족인 마스크(MASK)족이 출현했다’는 말이 있었지요. 피부색이나 국적, 빈부 격차를 뛰어넘는 동일한 패션으로 마스크가 등장한 데 대한 재치 있는 표현이었어요. 인구가 점차 줄어들기만 하고 도무지 늘지 않는 ‘인구절벽’ 현상이 세상의 큰 근심거리가 된 지는 꽤 오래됐어요. ‘지방소멸’·‘국가소멸’ 위기 걱정이 만만찮은 요즘이에요. 그러잖아도 치명적인 ‘기후 위기’ 때문에 인류 종말이 운위되기 시작한 시점에 겹쳐 등장한 이슈가 바로 ‘인구 위기’예요.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산아제한 운동을 벌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격세지감이 들죠? 얼마 전 발표된 통계청의 ‘사회조사로 본 청년의 의식변화’ 자료에 따르면 작년 기준 19~34세 청년 중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중은 고작 36.4%밖에 되지 않는다네요. 청년 남성(43.8%)보다 여성(28.0%)에서 결혼을 긍정하는 비율이 훨씬 더 낮다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군요. 놀라운 것은 결혼은 해도 자녀는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 비중이 응답자의 과반(53.5%)이라는 사실이에요. 2018년엔 46.4%였으니 아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말이 있지요.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받게 되니 항상 말조심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어요. 옛 선인들이 삶의 지혜로 여기고 지켜온 지혜 중에도 ‘신언(愼言)’은 참으로 소중해 보여요. 말을 삼가지 않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 ‘쓸만한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즐기는 도박 가운데 투견(鬪犬)보다 잔인한 노름은 없을 거예요. 불법 투견장 단속 뉴스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걸 보면 투견은 마약 같은 매력이 있는 모양이에요. 개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서로 물어뜯는 장면을 도박으로 삼는 불법이 극비리에 끈질기게 유통되는 건 참으로 불가사의한 현상이죠. 물리고 찢겨 악귀처럼 만신창이가 되는 개들을 보며 투기꾼들은 과연 어떤 희열을 느낄까요? 투견장의 광분을 부채질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이 걸어놓은 ‘판돈’일 거라는 짐작은 들어요. 자기가 베팅한 개가 이기면 돈을 벌 수 있으니 그럴 개연성이 높죠. 그러나 왜 하필이면 피투성이 개싸움일까요. 사람이나 짐승이나 피를 보면 흥분하기 마련이라는 이치를 보면 또 다른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아까운 인명이 스러지는 비극엔 아랑곳없이 정치
이기적 염세주의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칸트 사상을 왜곡하여 사이비 이론을 펼친다며 당대의 인기 철학자들을 모조리 인정하지 않았지요. 특히 독일 관념론의 대표적 인물인 헤겔(Hegel)을 싫어했는데, “정신병자의 철학을 늘어놓는 추악한 남자”라며 신랄하게 비판했어요. 그가 푸들 강아지 한 마리를 사서 이름을 ‘헤겔’이라고 짓고는 “이 멍청한 헤겔 새끼!”라고 구박하다가 화가 날 때면 개의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는 얘기는 놀라운 에피소드예요. 그런데, 극적 반전이 일어나지요. 쇼펜하우어는 그 개가 매우 충성스럽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름을 흰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진아(眞我)를 뜻하는 ‘아트만(atman)’으로 바꾸었어요. 사람보다 개를 더 높이 평가하게 된 그는 개의 눈을 바라보면서 “세계의 영혼을 본다”고 말했대요. 반면 인간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고슴도치에 비유하며 서로를 찌르는 욕망덩어리이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고통에 늘 시달리는 존재라고 여기게 되지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그렇게 발전돼간 듯해요. 짐승의 세계에서도 자주 볼 수 없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들이 속속
어떤 사람이 지혜 높은 스님을 찾아가 털어놓았대요. “스님. 제가 한동안 마약에 손을 댔다가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껄껄 웃으며 “그걸 왜 들키고 그래요?” 하는 바람에 찾아간 사람이 어안이 벙벙해졌대요. 스님은 “석가모니도 비틀즈도 다 마약하면서 새로운 경지를 연 사람들이에요. 다만 국가가 언제부터인가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게 죄가 되었던 것뿐이죠”라고 말하더래요. 스님의 마지막 말이 걸작이었다네요.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어요. 다만 두 부류가 있지요. 자신의 죄를 ‘들킨 죄인’, 자신의 죄를 ‘들키지 않은 죄인’이 있을 따름이지요.” …언젠가 신문에서 이 글을 읽다가 무릎을 친 적이 있어요. 엉뚱하게도, “누구든 죄 없는 자 있다면 나서서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외쳐서 위기에 처한 간음 여인을 구했다는 예수님 생애 일화가 생각났죠. 요즘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서 문득 ‘들킨 죄(罪)’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우리 사회에는 이미 만연돼 있는데, 아닌 척 살아가는 비리들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그중에 ‘뇌물’보다 더 끈질기고 고약한 풍습은 없는 것 같아요. 거액의 경제 문란 사건을 필두로, 모든 사건 뒤에
2002년 영국에서 출간된 장하준 교수의 명저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는 ‘선진국의 후진국 죽이기’를 별도로 정리한 책이지요. 보호무역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간 선진국들이 갑자기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것을 개발 도상국들이 뒤따르지 못하게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동이라고 명쾌하게 비유한 이 책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렀죠. 원래 외국에서 ‘별장’이나 ‘저택’을 뜻하는 용어인 빌라(villa)는 한국에서 묘하게 변화했어요. 다세대·다가구·연립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집합건물인데, 집장사들의 묘한 차별화 상술이 소비자들의 기호와 맞아떨어졌다고나 할까요. 주거환경에서 비싼 아파트와 큰 차이가 없는 빌라건축 붐은 우리 사회에서 지금도 실로 대단해요. 빌라는 오피스텔 대비 전용률이 높고, 아파트에 비해 동일 면적대비 가격이 낮다는 이점이 있어요. 주차장이 넉넉하지 않은 단점을 빼면 그냥 살기에는 참 괜찮은 집 형태에요. 빌라는 무주택자들에게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한 사다리처럼 기능해왔어요. 그 사다리의 가장 든든한 뼈대가 바로 우리나라의 독특한 임대제도인 전세(傳貰) 방식이지요. 전세 빌라는 고정지출을 절약해 목돈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