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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숲속을 거닐며] “남기고 나누다”

‘1% 나눔’에서 ‘레거시 텐10’으로

 

최근 나는 비영리조직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NGO 후배와 통화하다가 그녀가 자신이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 십수 년 전부터 시작한 유산기부 운동이 드디어 한국형 ‘유산기부법 레거시 텐(Legacy 10)’ 으로 입법발의했다는 얘기를 듣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그녀가 우리나라 유산기부 운동의 제도화를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닌 것을 누구보다 옆에서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신문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지난 3월 20일 ‘한국형 레거시 10(Legace 10)’ 도입을 포함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여야 의원들의 공감대 속에 국회에 발의됐다. 해당 법안은 초고령 사회와 1인 가구 증가 등 인구 구조 변화 속에서 가계에 묶여 있는 자산을 사회적 가치로 환원할 수 있도록 유산기부를 활성화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유산기부 세액공제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내 기부문화에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영국은 2012년 ‘레거시 10’ 제도를 도입해 유산의 10% 이상을 기부할 경우 상속세율을 40%에서 36%로 낮추는 세제혜택을 제공해 왔다. 이 제도는 기부 확대에 기여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유산기부는 단순 분배를 넘어 ‘사회적 상속’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기부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에서는 유산기부가 대표적인 기부 유형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려니와 전체 기부금의 32%(약 45억 파운드, 8조 9000억 원)를 차지할 정도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기부금에서 유산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1% 수준에 머물고 있어 제도적 지원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한국자선단체협의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50세 이상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5 유산기부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3.3%가 ‘한국형 레거시 10’이 도입될 경우 기부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상속세 감면혜택이 주어질 경우 유산을 기부하겠다는 응답이 전체의 53.3%에 달한 것이다.

 

상속(相續)은 ‘일정한 친족적 신분 관계가 있는 사이에서, 한 사람의 사망으로 다른 사람이 재산에 관한 권리를 이어받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상속은 아주 내밀한 개인과 가족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초고령 사회와 1인 가구 중심으로 가족 단위가 변화하면서 향후 20~30년간 대규모 자산 이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상속을 둘러싼 논의는 점차 사회적 의제로 확장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유산기부’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영국의 유산기부 확대에 이 ‘레거시 10’ 제도 도입이 결정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에 최고 상속세율이 50%로 높은 우리나라도 유산기부법을 도입하면 유산기부가 일정부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의 보고에 의하면 전체 기부금 가운데 개인의 상속 증여재산의 비율은 1%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반면 영국에서는 전체 기부금의 30% 이상이 유산기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초고령 사회에서 자산의 사회적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고 싶은데, 막상 유언장을 쓰려니 막막하네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퇴직한 지 10여 년째 되는 대선배님이 털어 놓은 고민이다. 평생 모은 재산을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하고 싶지만, 복잡하고 걸림돌이 많아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여유가 있다면 기부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막상 상속 시점이 되면 대부분 가족에게만 재산을 물려주고 생을 마감한다. 왜 그럴까.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관계자들은 기부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관련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도적 유인(세제혜택)과 신뢰할 수 있는 실행주체(전문기관·설계프로그램) 확보가 유산기부 활성화의 핵심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한국에는 ‘1% 나눔운동’이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2011년 소득의 1%를 이웃과 나누면서 시작한 이 운동은 큰 공감을 얻으며 한국 사회에 기부문화의 씨앗을 뿌렸지만 그런데 평소에는 소득의 1%를 나누면서 정작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것도 나누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죽을 때 무엇을 남기고 나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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