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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까마귀, ‘반전 드라마’를 쓰다

  • 안휘
  • 등록 2024.07.17 06:00:00
  • 13면

 

틈날 때마다 가는 시골 텃밭(월말 농장)은 바다가 가까운 계곡 꼭대기에 있다. 처음 그곳은 수십 년 묵밭이어서 가시투성이 아카시아가 흐드러진 잡목 야산이었다. 포클레인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밭 모양을 갖춘 지 몇 해가 지났어도 여전히 어쭙잖다. 맞은편 계곡과 산자락, 바람 따라 춤추는 무성한 나무들을 편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숲멍을 때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몇 해째 다니다 보니 뻐꾸기·산비둘기·딱따구리 소리에 정이 듬뿍 들어버렸다. 


텃밭 주변에는 까마귀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녀석들이 그 근처 나무들을 둥지 삼아온 세월이 길었던 듯하다. 저희끼리 어지간히 시끄럽게 수다를 떨기에 “이놈들이 저희네 집터에 무단히 들어왔다고 집세 내놓으라는가 보네” 하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언젠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삶은 달걀 두 개를 감쪽같이 훔쳐 간 일 빼놓고는 특별히 해를 입은 일은 없다. 


까마귀에 대한 고정관념은 사납다. 전설 속에서는 불길한 새로 여기는 험악한 속설이 많다. 죽음의 전조, 전쟁의 예언 따위의 누명도 붙어있다. 민화에서는 악마, 마녀, 저주받은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까치는 그 반대다. 오랫동안 익조(益鳥)로 여겨졌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도 상식에 가까웠었다. 그런데 이제는 까치를 길조(吉鳥)로 여기는 생각은 어림없게 됐다. 골칫거리 해조(害鳥)로 분류된 지가 오래다. 


과수원을 중심으로 애써 기른 농작물을 마구 먹어 치우고, 전봇대에 짓는 까치집은 단전 등 전기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까치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액이 매년 수십, 수백억 원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해마다 사람의 손에 의해 죽는 까치가 부지기수란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까치는 곡식·고구마·곤충·작은 동물·과일 등을 가리지 않고 먹는 식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 까마귀는 해조(害鳥)가 아니라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필요할 때는 도구를 이용해 해결할 줄 알 정도로 지능이 대단히 높고, 일부일처(一夫一妻)를 유지하며 늙은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유일한 효조(孝鳥)라는 고사(反哺之孝)도 있다. 까마귀에게 붙은 온갖 악담들은 하나같이 그릇된 미신이나 오해의 결과물이라는 얘기가 정설이 돼가는 중이다. 


까마귀의 기막힌 반전(反轉) 드라마가 오늘날 오해와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며 온갖 편 가르기 음모로 갈등의 수위를 한도 끝도 없이 끌어올리는 우리 인간사회에 주는 교훈이 만만치 않다. 어쩌면 우리는 까치를 익조로, 까마귀를 해조로만 여기는 어리석은 고정관념의 노예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처음엔 까마귀 떼의 소란에 기겁하던 아내가, 이제는 시골 텃밭에 갈 때마다 음식물 쓰레기를 잘 치워주는 녀석들에게 고마워한다. 그러고 보니, ‘세 발 달린 까마귀(三足烏)’는 우리 역사 속 웅비하던 고구려의 거룩한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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