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가 큰 나라는 코로나 피해도 엄청나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브라질이 그 예다. 브라질 사람 6000만 명이 코로나로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3월 볼소나로(Jair Bolsonaro) 대통령은 서둘러 비상대책법을 통과시켰다.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3개월 간 매월 680헤알(약 14만원)을 지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3개월은 턱도 없는 일. 코로나는 꿈쩍도 않고 상황은 더 악화돼 다른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볼소나로 대통령과 게지스(Paulo Guedes) 경제부 장관은 지난 9월 하순 랜다-브라질(Renda-Brasil)이라는 새 기본소득을 내 놓았다. 랜다-브라질은 볼사-파밀리아(Bolsa-Familia)를 통합하게 된다.
사실 브라질은 세계 최초로 시민기본소득법(Act of Basic Income of Citizenship)을 법제화한 나라다. 2004년 룰라(Luiz Inácio Lula da Silva) 대통령이 앞장서서 이뤄낸 성과다. 모든 브라질인과 5년 이상의 외국인 체류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너무 거창한 이상일까. 시민기본소득 대신 2003년 실시한 볼사-파밀리아만 계속해 왔다. 물론 이 수당도 아동이 있는 빈곤층 가정에 지급함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볼소나로 정부는 이 볼사-파밀리아를 랜다-브라질로 통폐합할 것을 약속했다. 기본소득의 일종인 랜다-브라질은 6900만 명의 브라질인에게 매월 300헤알(약 6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야심찬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비용이다. 어마어마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브라질 연방정부는 지금도 재정 위기로 사면초가다. 볼소나로의 랜다-브라질이 내년 재선을 노린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이 이래서 나온다.
이와는 달리 지방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착실히 실현해 나가는 곳도 있다. 리오데 자네이로에서 60킬로 떨어진 마리카(Maricá)가 그곳이다. 엘파이스 브라질(El País Brasil)의 보도에 따르면 마리카는 2013년 내놓은 혁신정책(지역화폐로 주는 기본소득)으로 코로나 쇼크를 상당히 경감시키고 있다. 16만 명이 살고 있는 마리카의 성공비결은 뭄부카(mumbuca). 시가 발행한 디지털 화폐다. 뭄부카는 시민기본소득(BIC)으로 지역화폐를 마리카 주민에게 지급하고 이 화폐는 브라질 화폐 헤알과 바꿀 수 없다. 38살의 뉘네(Luciana de Souza Nunes)는 “이 작은 원조가 보다 반듯한 삶을 살게 해 준다”라고 설명한다. 코로나로 브라질 경제는 쇠퇴하고 있지만, 마리카는 반대다. 길거리에 나 앉거나 의기소침한 사람들도 볼 수 없다.
마리카의 기본소득 대상은 볼사-파밀리아처럼 극빈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중산층 가정까지 확대하고 있다. 1뭄바카는 1 헤알(약 200원). 2013년부터 1만4000가구를 대상으로 식구 한 명당 85뭄부카를 지급했다. 2019년 말에는 4만2000명이 130뭄부카를 받았다. 많은 사람은 마리카의 기본소득을 브라질 연방정부의 극빈층으로 확대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여러 형태로 다양한 여정을 밟아가고 있다. 심화된 빈곤과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시민기본소득법을 최초로 만든 브라질이지만 아직은 그림의 떡이고, 변형된 기본소득만 난무하고 있다. 마리카 기본소득 역시 완전한 기본소득이라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뭄부카의 효과는 크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기본소득은 단숨에 혁명으로 가기보다 마리카나 성남시, 그리고 경기도 농촌과 같은 작은 단위로 실시해 노하우를 축적한 후 전국 단위로 확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