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KBS TV 교양프로그램 작가로 일하던 때 동네 문화회관의 부부 사교댄스 프로그램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뒷말이 많았다. 저녁 6시대에 퇴폐조장장면을 내보냈다는 이유다. 2000년 넘어서도 ‘월드뮤직 인문학’ 이름의 대기업 강의를 맡았는데 강의 직전 담당자가 찾아와서 ‘탱고’ 부분은 빼면 안되겠는가고 절박하게 물었다.(나의 대답은 ‘강사를 빼면 안되겠는가?’ 였다)
그런 이력이 있으니 2014년 피겨스타 김연아의 소치 동계올림픽 때 배경음악으로 탱고가 흐르고, 경기 후 언론이 찬사로 도배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만감이 교차’ 했다. 배경음악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는 탱고가 저질 춤곡이 아닌 ‘클래식 반열에 오른 음악’ 임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주었다.
이 음악이 세계인의 가슴을 흔든 일이 있었으니 2002년 네덜란드 왕세자 결혼식 때였다. ‘가슴을 흔든’ 데는 음악 자체의 매혹도 있겠지만 정치가 얽혀들어 비극으로 끝날 뻔했던 사랑 이야기 때문이기도 했다.
1999년 스페인 세비야의 한 파티에서 만나 첫눈에 서로 반해 결혼을 꿈꾸게 된 네덜란드 왕세자 빌럼 알렉산더르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막시마 소레기에타. 그러나 막시마의 아버지가 아르헨테나 군부독재시절 농업부 장관이었던 전력에 네덜란드 국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친다. 국회는 특별위원회까지 구성, 막시마 아버지에 대한 조사를 벌인다. 이에 알렉산더르는 ‘국회에서 결혼을 승인하지 않으면 왕세자 자리를 내놓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결혼식은 ‘막시마 아버지의 불참’을 조건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혼식에서 연주된 곡이 바로 ‘아디오스 노니노’. 노래 배경을 아는 이들에게 연주 때 눈가를 닦던 신부 모습이 참으로 애잔했을 것이다.
‘아디오스 노니노’는 스페인어로 ‘안녕, 아버지’라는 뜻. 작곡자인 피아졸라는 이 음악을 이국땅에서 울며 만들었다.
유럽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피아졸라는 탱고를 클래식과 재즈에 접목, 새로운 탱고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고국에서 탱고 작곡자, 연주자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타국을 떠돈다. 1959년, 미국 체류 중 청천벽력같은 아버지의 부음을 듣는다.
아버지는 그에게 생을 두 번 준 이였으며 음악의 첫 번째 스승이었다.
이발사였던 아버지는 극빈한 살림에도 선천적으로 오른쪽 다리를 저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수차례 외과수술을 해서 완치시켰다. 여덟 살 피아졸라에게 반도네온을 사주며 음악의 세계로 이끈 이도, 모두가 탱고를 술집음악이라고 천격시할 때 ‘내 나라 피가 흐르는 음악’이라고 말해준 이도 아버지였다. 유럽 유학 이후, 재능이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아들에게 ‘대단한 사람이 될 거다. 앞장서 나가는 사람이 될 거다’라며 끝까지 믿어주던 아버지.
끝내 아들이 세계적인 대음악가가 되는 날을 못보고 이승을 떴다. ‘아디오스 노니노’는 아버지에게 바치는 음악이었다.
피아졸라는 ‘내 생애 이보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좋은 시대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피아졸라의 반도네온 연주를 유튜브로 바로 볼 수 있으니. 아르헨티나 피아니스트 라울 디 블라지오(Raul Di Blasio)의 연주도 추천한다.
(인터넷창에서 www.월드뮤직.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