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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재미있는 仁川 20 - 아버지의 침묵, 똥고개

 아버지의 침묵, 똥 고개

 

 도시로 몰려든 문명의 이기를 생각하면 도시는 채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수도승처럼 비우고 또 비우는 것이다. 눈 돌려 보면 다 자연이라 하겠지만 자신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진짜 자연으로 오아시스 같은 곳, 비록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전생의 인연처럼 뿌리내리고 이날 이때까지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고향 같은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도시의 속살을 사생한 고향이나 다름없다.

 

사도(思道)에서 사도(邪道)를 걷지 않으며 느릿느릿 흐르는 서정적 도취를 음미하며 이드거니 읽고 또 보며 걷는 길은 유년의 기억과 결속한 삶의 궤적이 담겨있는가 하면 도시와 자신의 생과 역사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인천항이(만석과 화수부두 포함) 본격적으로 개항돼 인천의 중심지 기능을 수행하게 된 것은 1883년 개항 이후다. 개항으로 쇠문처럼 닫아건 정책이 무너지고 무역으로 이익을 챙기고자 서구열강들이 조선에 발을 담그고 각축전을 벌였다.

 

인천은 개항 이후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지척의 도시로 행정의 중심 통이자 외국 문화유입이 급속으로 확산된 도시로 변해버렸다. 외국인 전용 거주지가 조성돼 일본인, 중국인, 서양인(각국 조계)들은 땅 차지하기에 혈안이었다. 이 슬픔이 곧 각국 조계에 밀려 변두리로 밀려난 것이다.

 

동란으로 피난민이 돌아갈 고향을 지척에 둔 인천으로 모이며 호남과 영남 심지어는 영서 지방까지 모이게 된 것이다.

 

외국자본의 유입과 포화상태를 이루는 인구들로 인해 도시계획이 필요했고 도시계획으로 길이 열리고 열린 길을 넓히게 됐다.

 

그 도시계획은 주로 외국인 거주지로(현재의 중구지역) 한정돼, 인천의 중심부로 부각됐으나 동구는 원인천의 모습도 상실한 채 소외된 지역인 것 같다.

 

수문통길과 송현로 그리고 중봉로가 만나는 송현4거리에서 샛골길과 만나는 황금고개 사거리까지를 걸어보자. 타임머신을 타고 뒤로 해방공간 시절까지. 수도국산 뒤편 기슭 우거진 숲이 있었다. 그리고 울창한 소나무가 있었다고 전해 왔다.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산기슭에 밭을 일궈 푸성귀를 심어 먹었다. 밭을 일구자면 헐떡거리며 올랐을 것이고 푸성귀를 심자면 씨앗도 중요하지만 오늘날처럼 화학비료 언감생심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유기농(?)법 농사였다면 너무 거창 하지만 배설물로 거름을 했던 것이다.

지금은 도로명이 바뀌었지만 그 때부터 부르던 길 이름이 ‘똥’고개였다. 똥 밟으면 재수 좋고, 똥 꿈꾸면 횡재수, 오늘날 같으면 복권 당첨되는 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투에 똥 광만 들어오면 ‘판소리’하는 기분이 들었던 생각 한없이 좋았던 추억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로는 철학 중에 ‘똥’에 관한 철학이 따로 있다 하니 어쩌면 학문적 접근이 필요할 것도 같다.

 

먹거리의 초기 생산을 논해보면 자연순환의 법칙이 먹고, 배설하고 거름으로 주어 다시 싹과 열매를 튀어 다시 먹는 순환의 연속, 정말로 자연은 위대한 섭리가 아닐 수 없다.

 

색은 노란색이라고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노란색, 즉 황(黃)은 금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똥=황금이다. 어떤 방정식보다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똥고개는 그래서 황금고개로 불려질 수 밖에.

 

길의 변천사를 보면 시대적 상황과 서민의 애환과 삶이 묻어있는 징표이다. 그런 길이 어느 곳보다도 많은 곳이 동구다. 구수하기까지 한 우리네 삶의 터, 개항 이후 생긴 다른 구에 비하면 민족적이고 보통사람들의 향이 제일 많이 풍기는 곳인가 싶다.

 

이 황금(똥) 고개의 자랑이라면 근·현대 연극사에 중요한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 인천의 변화라면 문화예술 분야에서 획기적일 만한 ‘인천시립극단’이 창단돼 윤조병(1939~2016)이 상임 감독을 맡으며 그의 작 ‘아버지의 침묵’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무대는 한 여인의 편지를 받으며 시작된다. 그 편지의 주인공이 살고 있을 법한 인천 수도국산 속칭 똥고개 마을을 윤조병(극작가)이 직접 찾아가 여러 가지의 이야기를 수집하며 시작된 ‘아버지의 침묵’ 무대가 바로 황금(똥)고개라는 것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1990년 전국 연극제 대상을 탄 ‘아버지의 침묵’을 놓고 각 언론사의 연극평은 도시와 바다가 보이는 인천 수도국산, 일명 똥고개에 자리 잡은 달동네를 배경으로 도시 빈민 소외계층의 아픔과 시대적 모순을 고발 눈길을 끌며 따뜻한 인간애로 풀어간 감동적 연극이었다고 했다.

 

황금고개길에 저녁 햇살이 내리며 수도국산의 산 그림자가 송현주공아파트를 감추어가고 있다./김학균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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