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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숙영의 젠더프리즘] 누가 마릴린을 웃게 할까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섹스 심벌이자 금발의 백치 미녀로 불리지만 정작 자신은 이러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연기를 배우고 프로덕션을 차려 스스로 바라는 모습을 구축하기 위해 애썼다.

 

노마 진 모터슨(Norma Jeane Mortenso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녀는 친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일곱 살 때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보육원과 양부모 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고 결혼을 하고서도 남편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의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 불행으로 점철된 과거를 딛고 모델과 배우 일을 하며 마침내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지만, 약물 중독으로 36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사후의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이미지에 갇힌 채 커다란 동상으로 남아 수모를 당하고 있다.

 

2011년 조각가 수어드 존슨은 영화 ‘7년 만의 외출’에 나오는 먼로를 재현한 동상 ‘포에버 마릴린’을 제작했다. 높이 8미터, 무게 약 15톤의 이 거대한 동상은 2년이라는 제작 기간이 걸렸고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부여잡는 먼로의 속옷을 드러냈다. 먼로 동상의 치마 밑에서 팬티를 올려다보고 시시덕거리며 사진을 찍는 것이 관광 코스가 되자 시카고 주민들과 여성 단체는 동상의 철거를 주장했다. 이후 먼로의 동상은 여기저기 옮겨 다녔고 최근에는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 미술관 앞으로 옮겨졌다.

 

동상이 제작된 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2017년 말 미투 운동이 거세게 일면서 정재계 인사, 문화예술인, 연예산업 관계자 등 많은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되어 처벌을 받거나 은퇴했지만, 작고한 배우를 비하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한 동상은 여전히 우뚝 서서 치욕의 시간을 버티고 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먼로는 평안을 얻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나라에도 마릴린 먼로공원이라는 별칭을 가진 강원도 인제 자유수호 희생자 위령탑이 있는 곳에 먼로의 동상이 서 있다. 6·25가 끝난 지 이듬해인 1954년 마릴린 먼로가 인제에 있는 미군 부대를 찾아 한 차례 위문 공연을 했다는 실오라기 같은 인연을 찾아 동상을 세운 것이다. 먼로 동상은 수어드 존슨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7년 만의 외출’의 유명한 장면인 ‘치마 씬’의 치마를 부여잡은 모습으로 웃고 있다.

 

생전에 마릴린 먼로의 미소는 시그너처와도 같이 어디나 따라다녔다. 남아 있는 사진 속 그녀는 거의 웃는 모습이다. “웃어요. 인생은 아름다우니까요. 세상에는 웃을 일이 많아요.” 이렇게 말하며 미소를 띠는 그녀는 오늘따라 더욱더 슬퍼 보인다.

 

우리는 여성에 대한 시각과 생각, 그리고 처우가 변했다고 믿지만,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온라인도, 직장도, 군대도, 학교도 안전지대가 아니기에 여전히 누군가는 어디선가 울고, 아프고, 숨을 끊는다. 누가 진정으로 마릴린을 웃게 할까. 동상을 만든 사람, 동상을 세운 사람, 동상 앞에서 히히대는 사람들은 과연 웃음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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