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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작비(昨非)

 

"과거는 과오의 시간!"

요즘 기준으로 시골 면장쯤 되는 자리로 승진 전보된 하급관리가 부임 후 80일이 되었을 때다. 부하가 "상부에서 감찰 나온다 하니 의관을 정제하고 영접해야 한다. 그렇게 안하면, 머지않아 반드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한다."고 귀뜸한다. 미관말직으로 간신히 쌀독을 채우며 살던 그 관리는 그 말에 크게 모욕을 느꼈다. 잠시 후 결연히 외친다.

 

"我豈能爲五斗米折腰於鄕里小兒"
"내 어찌 쌀 다섯 말에 그 어린 촌놈에게 허리를 굽히겠나." 폭탄선언이었다. 

 

1600년 전, 중국 동진시대의 큰 시인  도연명(365ㅡ427)이 마흔 살 때다. 그렇게 직장을 때려치고 귀향하여 그가 남긴 시가 우리 모두 감동했던 '귀거래사(歸去來辭)'다. 이 시만 보면 시인은 별문제 없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여생을 보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를 흠숭했던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도연명의 옛집을 찾아서'라는 시에 보면, 백이·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갈 때는 홀몸이었고, 도연명은 별로 똑똑하지 않은 다섯 아들을 둔 가장이었기 때문에 시인이 더 세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長詩에서 6父子가 추위와 굶주림을 함께 겪는 장면은 볼 때마다 눈물겹다.

 

 '걸식(乞食)'이라는 시를 보면, 시인은 배가 고파서 집을 나선다. 걷고 또 걷다가 먼저 눈에 띈 어느 집 문을 두드린다. 주인에게 수줍어 말을 더듬으며 사정을 밝히고, 주안상을 받아 급히 속을 달랜다. 이어 시문을 읊으며 정을 나눈다. "죽어서라도 이 은혜를 갚겠다." 이 시의 끝 문장이다. 과장된 표현일까. '걸식'은 역사가 되었다.

 

추운 겨울, 배가 심히 고팠던 날,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얻어먹은 기억을 잊거나 고마운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일종의 패륜이다. 한신 대장군이 동네 불량배들의 가랑이 밑을 기는 모욕을 당하던 시절, 먹거리를 챙겨주던 빨래터의 아주머니(漂母)를 잊지 않고 천금을 하사한 고사(一飯千金)는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꾸중하는 높은 윤리이다.

 

'작비(昨非)'!
".....實迷途 其未遠, 覺今是而'昨非'...." (실은 길을 잃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온 건 아니다. 이제서야 내가 '잘못 살았음'을 깨닫는다.) 어제까지는 잘못 걸어왔지만, 오늘부터는 제대로 걸어가리라! 이 문장은 나를 포함하여, 마흔 살 넘어서 긴 시간 신산 고초의 험산준령을 넘은 이들에게는 격조 높은 인생론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 모진 세상에 굴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품위를 지켰다.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나오는 '찬란한 슬픔'을 느낀다. 

 

우리나라 대통령 하겠다는 자들의 지난날들도 위와 같은 품격으로 다루어져야 옳다. 전직 총리 장관도 과거는 부끄러움과 아쉬움으로 점철된 회한의 시간일 뿐이다. 정직이 정답이다. 이재명이 먼저 네거티브 중단을 선언했다. 진정이든 전략이든 잘했다. 능력과 미래로 승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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