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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유월 저승이 지나면

 

책의 은혜를 입고 살아왔다. 책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의 나는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자유 독서’ 시간을 즐겼다. 때문에 책 속에서 스승과 선배와 성인을 만났다. 철들면서는 봉급의 몇 퍼센트를 떼어서 서점으로 책 사냥 가듯 찾아가 좋은 책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독서량이 불어나면서부터는 책을 엄격히 가려서 읽었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고 믿었다. 경전은 소리 내어 읽었고 책을 통해 자신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 속에서 ‘기준 잡힌 인생을 만나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람을 만나며, 독서와 사색하는 자를 만나라’는 충고도 들었다. 그래서일까 읽고 있는 책이 다 되어 가면 두뇌의 연료가 바닥난 것처럼 불안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는 푸시킨의 시에서처럼 삶의 위로와 용기도 얻을 수 있었다.

 

10여 일 지나면 추석이다. 추석을 맞기까지는 그동안 많은 사람이 고통의 터널을 견뎌왔다. 음력 유월의 유두를 중심으로 중복과 대서, 말복의 더위 속에서 코로나 예방과 방역의 짐을 짊어지고 묶인 발로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이때 나는 내 어린 시절 고향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농민들은 유월 농번기 때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오죽하면 유월을 ‘저승 살이’라고 하였겠는가. 고향에서는 삼복더위에 논의 김을 매는 일이 제일 고역이었다. 나락 잎에 팔꿈치가 훑이고 상처에 땀이 닿으면 어떻게나 쓰리고 아픈지 생각만 해도 팔뚝이 저릿저릿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른들은 이야기하는 도중에 ‘똥 묻은 바지라도 팔아서 아들을 가르쳐서 지게 밑에서 썩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농부가 피땀 흘려 생산한 쌀로 지은 것이다. 경건한 생각 없이 어찌 먹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는 누구나 밥풀 하나 버리는 일이 없었다. 음식을 함부로 버리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그 정신으로 농부들은 자기 일을 천명(天命)으로 알고 뼈가 으스러지게 일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뭐든 사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생산자에 대해 감사함을 잃었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풍조와 함께 ‘농자(農者)는 천하지 대본(大本)’이라는 말 대신, 천하의 봉으로 생각해서인지 농부들도 모든 농사를 기계에 의존하게 되었다. 기계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의 본성을 잃게 했다. 동양적 가치는 깨끗한 인성의 고양이었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이 서구(자본)화되어 논과 밭이 ‘땅’으로 변하더니 부동산 용어로 금값이거나 똥값이 되었다. 고향을 떠나온 뒤 부모도 잃고 고향도 잃고 아련한 추억뿐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해석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할 정도로 수학에 능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길에 주인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였다. 그런데 지금도 눈에 선한 것은 농부들도 가을이 되고 추석이 되면 모시옷 풀 먹여 날이 서게 다려 입고 마을 정자나무 아래서 바둑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농부가 신선 같았다. 책 읽는 사람은 군자 같았고 바둑을 두는 농부는 신선이 되었다. 그래서 ‘유월 저승 절기가 지나면 팔월 신선이 온다.’는 속담을 낳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추석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