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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은 이사장 "최소한 돈 없어 못 배우는 사람 없도록 노력할 것"

서인천장학회 이끈 지 2년5개월 "학생들의 맑은 눈 볼 때 보람과 긍지 느껴"
자수성가 기업인...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등 사회적 책임 실천 모범

“장학금을 주면서 앞에 있는 학생들의 맑고 깨끗한 눈을 보았을 때,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지역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서인천장학회를 이끌어오고 있는 최광은(63·케이앤제이텍스타일 대표) 이사장. 그가 장학회 운영을 맡은 것은 2019년 4월부터다. 어느덧 2년 5개월이 됐다.

 

서인천장학회는 만만치 않은 관록을 자랑한다. 1977년 창립돼 44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서구 일원 기업과 주민들이 십시일반 출연한 재원(財源)을 토대로, 철저히 지역에 기반을 둔 형태로 운영된다.

 

설립자인 최기영 회장에 이어 김용식 현 서구발전협의회장이 오랜 기간 장학회를 꾸려오면서 탄탄하게 다졌다. 그간 장학회가 지역 꿈나무들에게 지원한 장학금은 2021년 9월 현재 900여 명, 모두 11억여 원에 달한다. 서구는 물론 인천을 대표할만한 장학회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토대가 잘 갖춰져 있고, 지명도가 높은 단체의 수장을 맡은 것이 오히려 부담은 되지 않았을까?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장학사업은 평소 제가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앞으로도 여력이 있는 한 멈춤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평소 장학사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최 이사장은 주저없이 결정을 내렸다. 이후 큰 보람과 긍지를 갖고 장학회와 함께 해오고 있다.

 

최 이사장 취임 이후 서인천장학회의 장학금 지급 방식은 크게 바뀌었다. 종전까지는 수혜 대상자가 매번 달랐으나, 한 번 장학생으로 추천된 학생에게는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주는 것이다. 큰 걱정 없이 공무에만 매진할 수 있는 수혜 학생과 학부모, 학교는 물론 지역사회로부터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형편에 따라 배움의 기회가 차별화돼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持論)이다. 최 이사장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1명이라도 올바르게 사회로 보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장학회를 운영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이사장은 흔히 성공한 ‘자수성가형’기업인으로 불린다.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가 오늘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지난 40여 년 간 겪었던 실패와 좌절,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흘렸던 노력과 땀을 ‘자수성가’라는 단지 4글자에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4살 때 혈압으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쓰러지신 이후 급격히 기울어진 가세는 1975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그의 발길을 고향 백령도를 떠나 인천 뭍으로 향하게 했다.

 

배에서 우연히 만난 중학교 친구들과 지금의 계양구 작전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고, 남성 신사복을 만드는 섬유회사에 들어갔다. 10대 중반의 나이에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공부도 병행했다. 회사 작업을 마치고 영등포에 있는 학원을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당시 공장은 일감이 밀리면서 주야로 쉴새없이 돌아갔다. 공부를 위해 짬을 낼 틈이 없었다.

 

결국 최 이사장은 배움의 길을 포기했다. 완강히 반대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백령도를 나올 때 했던 ‘공부해서 꼭 성공하겠다’는 굳은 다짐은 굵은 눈물방울과 함께 그렇게 접혔다.

 

이후 최 이사장은 ‘기계’와 ‘기술’에 매진했다. 파고 또 파고 들었다. 판로 부재와 대금 사기, 각종 사고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역경을 헤쳐온 지 어느덧 40여 년. 이제는 회사 규모도 번듯해지고 기반도 탄탄해졌다.

 

1994년 서구에 자리잡은 그의 회사 (주)케이앤제이텍스타일은 이불솜과 침대 부자재를 만든다. 이불·침대뿐 아니라 자동차, 비닐하우스, 토목 등 우리생활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 회사의 독자적인 브랜드 ‘코지 필(Cosy Feel)’은 업계 최상위 수준이다.

 

최 이사장이 자신있게 내세우는 생산품은 아웃라스트(Outlast) 섬유. 쾌적한 온도를 자체적으로 유지하는 섬유로,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우주인을 위해 개발된 소재다. 체온을 일정하게 보호해줘는 기능을 갖고 있어 고급 제품에 주로 들어간다.

 

“어릴 적 공장에 다니며 했던 다짐 중 하나가 나중에 돈을 벌면 홀몸노인과 돈 없어 학업을 포기하는 이를 돕겠다는 것이었죠.”

 

최 이사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에서 기부천사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늘 마음 한 켠에 담아왔던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안타깝게 학업을 잇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주저없이 달려갔다. 장학회를 맡기 전까지도 그의 지원으로 7명의 학생이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최 이사장은 “기업인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단지 이윤 창출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은 마땅히 가져야할 자세”라고 말한다. 순수 개인 차원에 머물던 지원을 넘어 그가 2016년 12월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93번째 회원으로 가입한 것도, 2019년 서인천장학회 이사장에 취임한 것도 사회에서 얻은 이익은 사회로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그의 경영철학의 연장선상이다.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고향 백령도에 대한 생각도 애틋하다. 백령중학교 총동문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고향과 관계된 일에 관심과 정성을 쏟고 있다.

 

“그간 기업인으로 살아오면서 참 많이도 망해 봤습니다. 주변의 여건도 한몫 했지만 돌이켜보면 저의 자만이 큰 이유였죠. 하지만 그 실패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알았다고 할까요? 앞으로도 늘 세상이 저에게 준 그 훌륭한 교훈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적어도 인천에서만큼은 자신처럼 가난해서 못 배운 설움을 겪는 사람이 생기지 않고, 보다 많은 공적 이익이 사회로 환원돼 소외 이웃들에게 밝은 등불의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 위해 그는 지금보다도 더 많은 봉사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사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주고, 오늘의 감사한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준 인천의 발전에 미력이나마 꾸준히 힘을 보탤 생각이다.

최광은 이사장은 “저를 비롯한 주변의 뜻 있는 분들이 모아 준 수분을 흠뻑 받은 우리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뛰어난 미래인재로 커가는 모습이 정말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다”고 밝힌 뒤 “앞으로 힘이 닿는 데까지 오래도록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자전거 타기 등 건강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 경기신문 / 인천 = 이인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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