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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당신의 삶이 빛나 보일 때

 

어린이놀이터 옆 정자나무 쉼터에 걸터앉아 어린이들 노는 모습을 본다. 손자 또래 아이들 대여섯 명이 콘크리트 의자에 가방을 얹어놓고 신나게 놀고 있다. 무슨 놀이인지 한 아이는 호루라기를 불고 다른 아이들은 도망을 치고 뒤를 쫓아가기도 한다. 검은색 반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었는데 한 사람 같이 토실토실 건강해 보인다. 사랑스러운 생명의 풋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조금 놀다 어디에서 다시 모이자고 했는지 썰물같이 사라져 갔다.

 

다른 어린이가 아빠 손을 잡고 등장한다. 아이는 그네를 타고 싶은데 잘 나가지 않는다. 앞으로 걸어갔다 뒤로 밀려오는 반동을 이용해 재밌게 타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빠가 다가간다. 아들을 그네에 앉히고 그넷줄을 꽉 잡게 하고서 밀어 높이 띄워준다. 아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한다.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사진을 아들에게 보여주며 함께 웃는다. 아빠의 환한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한동안 신나게 놀다가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돌아갔다.

 

얼마 후 동생인 듯싶은 서현이가 엄마와 함께 나타났다. 엄마는 딸 서현이가 어린지라 눈 안에서 놀도록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넷줄을 손으로 잡는 법도 알려주고 서현이를 발판에 잘 앉히고 조심조심 밀어주었다. 시소도 마찬가지로 조심히 앉히고 엄마는 앞자리로 가서 서현이가 천천히 떠오르게 했다.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서현이는 분홍 티셔츠+청바지+분홍색 운동화 차림이었다. 서현이 엄마는 딸이 정글짐에서 놀 때는 그 아래에서 만약의 경우 받아주려는 긴장된 자세였다. ‘그래 엄마라는 존재가 가장 빛나 보일 때가 바로 저런 순간이야’라는 마음으로 긍정의 박수를 보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배 속에 아이가 생기면 임신부가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는다고 했다. 세계적인 과학자로 길러내겠다는 야심 찬 희망에서다. 그리고 그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교 때는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서울우유를 그리고 성적이 좀 아쉬우면 연세우유를 이어서 고등학교 때는 건국우유를 먹이다가 3학년 대입 때는 제발 지방대학만은 면하라고 저지방 우유를 먹게 한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태어나 보았자 기다리는 것은 경쟁뿐이다. OECD 국가 중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드는 반면, 서로 간에 경쟁으로 인하여 가장 불행한 나라라고 아이들은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남을 이기고 짓밟아 1등이 되기 위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고 살아가야 하는 1등을 위한 경쟁 공화국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타인의 고통에도 슬퍼하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자비심과 이웃 사랑을 생각하며 상식화와 인간화를 가르치고 실천하게 하는 국가 교육이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서현이 엄마는 날씬하지도 않고 뚱보도 아니다. 적당한 몸매로 딸과 놀아주는 그 모습이 고맙기만 하였다. 서현이 엄마는 1인 시위할 사람도, 과외공부 비용을 위해 노래방 도우미로 아르바이트할 사람도 아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서현이가 엄마와 노는 모습을 끝까지 보았다. 그리고 서현이 앞세우고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에 대고 나는 말했다. ‘당신의 삶이 가장 빛나 보일 때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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