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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재미있는 仁川 27 - 봄날은 올까, 동인천(역)에

 봄날은 올까, 동인천(역)에

도시(都市), 도시라는 말의 어원은 중국을 발상지로 할 수 있다. 도(都)는 궁성으로써 천자(天子)가 거락했던 의미였고 시(市)는 교역이 행하여지는 장소를 의미했다. 그래서 도시는 다수의 상인이 모여있는 곳, ‘시가지’ ‘궁성’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어원에 의하면 도는 정치적, 행정적 중심지 개념이며 시는 상업적, 경제적 개념이 집중되어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의 영역을 더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면서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도시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천,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도시는 문화저장소이며 도시의 상징인 도로, 광장, 공공건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높은 인구밀도와 농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거대집단 정착지’로 보는 것이 프리드만(J.Friedman)의 결론이다.

 

동인천(역)에 섰다. 가을장마가 길다. 가을걷이에 쓸모없는 객수도 한 여름을 일거에 쓸어갈 냥 적지 않게 내린다.

 

광장답지 못한 광장이 황량하기만 하다. 인천을 대표했던 길, ‘용동 마루턱‘은 상가의 불이 꺼진 채 가로등만 비에 젖고 있다. 이 시대 코로나가 낳은 풍광이다.

 

동인천(역)은 문패를 단지 올해로 66년이다. 그 문패를 달기까지 곡절이 참으로 많았다. 본시 집주인이 바뀌어야 바꾸건만 경인선 개통(1899년) 당시 축현이 서너 번 바뀌는 곡절 끝에 단 이름이다. 인천의 관문으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역사의 한 축이건만.

 

광장(廣場)은 곧 민주주의의 대명사로 풀이 한다면 어폐가 있긴 하겠지만 대통령,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유세현장이 곧 동인천(역)이었다. 답동이나 주안 시민회관이 있던 곳도 출마자 정견발표의 장으로 간혹 이용되긴 했지만 문물이 입·출고되는 동인천(역)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다.

 

1942년 일제는 말레이반도를 위시한 동남아 전장에서 승전하며 12만 명의 포로 중 1000명을 서울, 부산, 인천으로 분산 수용했고 동년 9월 200명(영국, 호주, 미국 병사들)을 동인천에 도착시키게 되는 것을 필두로 불편한 진실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45년 해방은 되었으나 일경(日警)에 의한 치안유지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미군이 인천항에 도착하자 부둣가로 환영인파가 몰리면서 일경의 총탄에 사망자(노동조합 인천 위원장 권평근, 보안대원 이석우)가 발생, 건준(건국준비위원회) 인천지부 주최의 시민장이 열렸었다. 영결식장은 ‘인영 극장’으로 좌, 우익 활동이 타 도시에 비하여 못지않은 인천의 수난을 동인천(역)은 감내하고 있었다.

 

세계선수권대회 그리고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환영식은 물론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로 대표되는 귀국 장병들의 환영식이 열렸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가끔 열렸던 북한 규탄 궐기대회와 KAL기 납치사건으로 촉발된 송환촉구대회를 비롯, 근대의 핵폐기물 선정지(굴업도) 반대를 위한 인천 환경단체의 모임 등 공적인 행사 말고도 다중집합성이 뛰어난 동인천(역)의 모습이다.

 

88올림픽이 열리기 전 동인천(역)은 봄날, 신세가 훤했다. 하지만 민간자본이 투입된 일명 민자역사(民資驛舍)가 1989년에 들어서며 봄날은 간다가 아니라 가버렸다.

 

인천백화점이 생겨 좋았다 말아버린 12년, 수많은 사람들의 허파 같은 광장, 그리고 하늘은 실종되었다. 덩그러니 큰 종이상자 하나 떨어져 있는 꼴, 이제는 흉물(?)스럽다.

 

노랫말처럼 이별과 만남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곳, 동인천(역)의 봄날은 올까? 추억은 아름답다. 그 추억을 다시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 볼 수 있는 기회는 있기는 한 건지 기약이 없다.

 

정치 말고 상권이 살고 문화가 있는 도시의 기능이 예전과 같은 동인천(역)에 다시 서성대고 싶다. “응, 그래 그러면 다음 일요일 동인천(역) 대합실에서 만나.” 핸드폰이 아닌 전화기 속에서 들리는 그 시절이 그립다./ 김학균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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